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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가는 길 ㅣ 태학산문선 106
유몽인 지음, 신익철 옮김 / 태학사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홀로 걸어 빛난 이
유몽인柳夢寅(1559~1623)은 임진왜란과 광해군 때 주로 활동했던 사람으로 '어우야담於于野談'의 저자로 익숙하다. 인조반정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반정이 일어난 지 넉 달 만에 광해군을 복위시키려는 모의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정조 때 신원되었다. 그의 문장은 제재와 구상이 독창적이고, 의경이 참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집으로 ‘어우집’이 있으며, 야담집 ‘어우야담’은 수필문학의 백미로 손꼽힌다.
'나 홀로 가는 길'은 유몽인의 '어우집-부어우야담'의 글에서 뽑아 산문, 야담과 일화, 문예론으로 분류하고 엮어 태학산문선으로 발간한 책이다.
1부 산문 편에서는 이 선집의 표제작인 '나 홀로 가는 길'을 포함하여 ‘묶음과 풀어줌’,
‘글로 전송하는 까닭’, ‘매학첩에 부치는 글’등이 수록되어 있다. 유몽인 산문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는 글로 보인다. 2부 야담과 일화에서는 황진이, 이애순, 유정, 석개 등 전해져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시각으로 새롭게 엮었으며, 임진왜란의 참혹한 실정을 체험한 후 쓴 '홍도'나 '강남덕의 어머니'같은 작품에는 민중들의 고난과 이를 극복하는 역정이 감동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또한 익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시습, 노수신, 이항복 등과의 일화를 포함하고 있어 글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3부 문예론에서는 ‘진정한 고문이란’, ‘사기를 배우기 어려운 이유’ 등을 통해 유몽인의 학문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을 알 수 있다.
누런 것은 스스로 누렇다 하고, 푸른 것은 스스로 푸르다 하는데, 그 누렇고 푸른 것이 과연 그 본성이겠는가? 갑에게 물으면 갑이 옳고 을은 그르다 하고, 을에게 물으면 을이 옳고 갑은 그르다고 한다. 그 둘 다 옳은 것인가? 아니면 둘 다 그른 것인가? 갑과 을이 둘 다 옳을 수는 없는 것인가? ('나 홀로 가는 길' 중에서)
지금 여기 한 사람이 있어 둘러 묶은 끈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흡사 무언가 꽉 잡아 맨 듯, 몸을 감고 조여오는데 스스로 풀 수가 없음은 유독 무엇 때문인가? 설사 누군가가 풀어주더라도 또 다른 이가 그것을 묶어 버린다. 푸는 사람과 묶는 사람이 서로 비슷한 적수라도 푸는 것이 쉽지 않은 법이다. ('묶음과 풀어줌'중에서)
유몽인의 글을 읽다보면 문장을 구성하고 이끌어가는 방식이 위의 두 글에서처럼 독톡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비슷한 글이 많다. 글을 읽어가는 리듬감이 살아나고 주장하는바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말이란 성정에서 나와 사악함과 올바름이 분별되는 것이다. 어찌 차마 네모난 마음을 지니고서 말을 둥굴게 하여 스스로 속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문장을 지을 때면 붓을 마음껏 휘둘러 두러워하거나 꺼리낌이 없었다."
정치적 균형과 자유로운 문학을 추구한 인물로 평가받는 유몽인의 말이다. 어떤 삶을 살아왔고 추구했는지 그가 스스로의 감정과 의지를 밝힌 말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