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귀한 가을날'
생명을 키워온 시간이 겹으로 쌓여 결실로 마무리를 해야할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이 햇볕이다. 고실고실한 가실의 바탕에는 그 볕이 있어서 가능하다.

익어 고개 떨군 나락도, 익어가는 감도, 붉은 대추도 볕에 익어야 달고, 고구마도, 수수에 콩에게도 볕이 필요하지만, 이 햇볕을 더욱 더 필요로하는 것은 무와 배추다. 김장에 필요한 채소를 키워낼 볕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몸은 춥고 마음은 허한 한겨울을 나는데 김장김치만한 것이 또 있을까. 마을 할머니들 갈라진 마음으로 가꾼 채마밭에 배추가 저절로 자빠진다.

무엇이 어긋나 하늘이 심통을 부리는 것일까. 올 가을은 햇볕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구름 속에 숨어버린 해를 탓할 수도 있지만 이미 복잡해져버린 마음을 달래줄 무엇하나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는 심사가 더 야속하다.

가을날 고실고실한 그 볕이 그립고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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