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花譜序 꽃에 미친 김군'

벽癖이 없는 사람은 버림받은 자이다. 벽이란 글자는 질병과 치우침으로 구성되어, '편벽된 병을 앓는다' 라는 의미가 된다. 벽이 편벽된 병을 의미하지만, 고독하게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전문적 기예를 익히는 자는 오직 벽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

김군은 늘 화원으로 달려가서 꽃을 주시한 채 하루 종일 눈 한번 꿈쩍하지 않는다. 꽃 아래에 자리를 마련하여 누운 채 꼼짝도 않고, 손님이 와도 말 한 마디 건네지 않는다. 그런 김군을 보고 미친 놈 아니면 멍청이라고 생각하여 손가락질하고 비웃는 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그를 비웃는 웃음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 웃음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만 남긴 채 생기가 싹 가시게 되리라.

김군은 만물을 스승으로 삼고 있다. 김군의 기예는 천고千古의 누구와 비교해도 훌륭하다. 백화보百花譜를 그린 그는 '꽃의 역사'에 공헌한 공신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며, '향기의 나라'에서 제사를 올리는 위인의 하나가 될 것이다. 벽의 공훈이 참으로 거짓이 아니다!

아아! 벌벌 떨고 게으름이나 피우면서 천하의 대사를 그르치는 위인들은 편벽된 병이 없음을 뻐기고 있다. 그런 자들이 이 그림을 본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을사년(1785) 한여름에 초비당苕翡堂 주인이 글을 쓴다.

*박제가朴齊家의 글이다. 이 글에 나오는 김군은 조선시대에 살았던 김덕형金德亨이다.

*꽃을 보는이 마다 마음에 박제가의 글에 담긴 이 뜻이 다 통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든 하나에 벽을 둘만큼 주목하게되면 그 안에서 얻어지는 이치가 분명하게 있음은 알고 있다. 수년간 꽃을 보며 얻은 깨달음이다.

하여, 나는 오늘도 꽃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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