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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날의 벗 ㅣ 태학산문선 101
박제가 지음, 안대회 옮김 / 태학사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북학의'에 꿈을 담아
조선 후기를 살았던 사람 박제가(朴齊家, 1750 ~ 1805)라고 하면 가장 먼저 ‘북학의’가 떠올려 진다. 그만큼 박제가를 대표하는 책이다. 그렇다면 박제가는 어떤 사람일까?
"조선의 학자로서는 드물게 상업과 유통을 중시하였고, 이용후생의 학문을 체계화하였으며, 현실의 개혁을 위해 중국을 배우자는 주장을 펼쳤다. 또한 18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참신한 시를 쓴 뛰어난 시인이었고,조선 후기 소품문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산문가였으며, 고고한 문기가 넘치는 그림을 그린 화가에다 속기 한 점 보이지 않은 절묘한 글씨를 쓴 서예가이기도 하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부르짖었던 개혁사상가인 그였지만, 사상을 현실정치에 반영할 수 없었던 서얼신분의 하급관료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불우하게 꿈을 접은 비운의 학자로 남게 되었다."
이 책 ‘궁핍한 날의 벗’을 번역한 안대회의 박제가에 대한 설명이다. 개혁사상가, 하급관료, 문인이었던 박제가의 삶을 대변해주는 글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박제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 책에는 ‘백탑에서의 맑은 인연’, ‘꽃에 미친 김군’을 비롯하여 ‘칭찬도 걱정도 하지 말라’, ‘북학의를 탈고하고’와 ‘북학의를 임금님께 올리며’와 같은 박제가의 산문 16편이 실렸다.
박제가의 산문을 통해 살펴본 사람들과의 교류는 백탑파로 알려진 박지원, 이덕무, 이서구, 백동수, 유득공 등과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학문을 논하고 시와 산문을 비롯한 그림과 음악 등 다양한 방면에서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고 뜻한 바를 다 펼치지 못한 시대를 아파했다.
특히, 박제가의 산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세속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의 글을 이에 대한 인간분석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는 이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고독하게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전문적 기예를 익히며 도리를 지켜서 외로이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예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꽃에 미친 김군’에서와 같이 그의 글 속에는 “서정성과 발랄한 재기가 넘치는 글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위트와 기지”가 넘친다.
무엇보다 박제가의 글은 변혁의 시대를 격동적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개혁사상가의 좌절된 꿈과 신분제 사회의 벽에 가로막혔던 자신의 처지를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비슷한 환경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도 함께 볼 수 있다. 넓게 두루두루 사람을 사귀면서도 늘 자신의 뜻을 펼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의 삶이 보이는 듯하여 산문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지는 시간이 된다.
‘물소 이마에 칼날 같은 눈썹’을 가진 사내의 심장에 들끓던 세상을 향한 꿈이 무엇이었는지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변혁의 과제와도 멀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