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해마다 피는 꽃이라도
같은 모습은 아니다
그 꽃을 바라보는 나는 같지 않다

* 시인 이정하의 시집 '다시 사랑이 온다'에 실린 '지금'이라는 시의 일부다. 

달콤한 향기를 가득 담은 금목서가 어제는 피는가 싶더니 오늘은 무게를 더하는 가을비에 속절없이 떨어지고 만다. 시인의 말처럼 매해 반복적으로 눈맞춤하는 같은 이름의 꽃도 나도 같지 않다. 피는 꽃도 새로운 생명이며 꽃을 바라보는 나도 무엇하나 같은게 없다. 비로소 민낯의 자신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늦은 봄 노각나무에서 문턱을 넘어선 가을 금목서까지 올해는 유독 떨어진 꽃에 눈길이 간다. 떨어지고서야 비로소 온전히 다시 꽃으로 피어나 제 사명을 다하는 꽃에서 다시없을 소중한 순간을 주목하게 된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담고 있는 소중한 가치를 온전히 품을 수 있다면 모든 생명은 매 순간은 꽃이 아닌 때가 없다. 떨어진 꽃은 자신을 떨군 이 가을비 보다 더 무거운 향기로 계절의 깊이를 더하고 스스로 온 곳으로 가는 중이다.

꽃으로 피었다 지며 향기로 남을 우리 모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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