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숨었고 밤은 젖었다.

"봄비는 가을을 위해 있다지만
가을비는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일까
싸늘한 감촉이 
인생의 끝에서 서성이는 자들에게 
가라는 신호인듯 한데

온몸을 적실 만큼
가을비를 맞으면 
그 때는 무슨 옷으로 다시 
갈아입고 내일을 가야 하는가"

*용혜원의 시 '가을비 맞으며'의 일부다. 시인은 '가을비는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굳이 대답이 필요없는 물음이다. 여름비는 몸으로 흠뻑 맞아야 제대로 맞은 느낌인데 가을비는 귀만으로도 물씬 젖어든다. 다 기울어가는 마음 탓이리라. 가을비에 젖은 마음은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 그저 견딜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닫을 수 없는 귀로 젖은 밤은 쉬이 잠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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