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산자 김정호
우일문 지음 / 인문서원 / 2016년 9월
평점 :
김정호, 자신을 지워 조선의 길을 열다
뚜렷한 업적을 남겼으나 그 업적을 남긴 사람을 기록하지 않았다. 심지어 생몰년대도 모른다면 필히 무슨 곡절이 있었을 것임은 누구나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다분히 당시의 정치적 갈등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이렇듯 기록이 없기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주목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 중 단연코 고산자 김정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호는 누구인가? 그는 조선시대 가장 많은 지도를 제작하였고, 가장 많은 지리지를 편찬한 지리학자이다. 그에 대한 기록은 최한기의 ‘청구도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등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라는 시대를 뛰어넘는 뚜렷한 역사적인 업적을 남기고도 생몰 연대, 본관,신분, 고향, 주요 주거지, 가계 등에 대해 어느 것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이런 아이러니가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조건으로 작용한다. 우일문의 소설 '고산자 김정호'가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김정호는 옥사했는가?” 역시 그런 상상력의 산물이리라.
작가는 일제 강점기 국어 교과서격인 ‘조선어독본’을 통해 ‘대동여지도’에 대한 기록울 접하고 그에 대한 의문을 갖는 것이 이 작품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이처럼 김정호를 다룬 다른 작품으로 박범신의 ‘고산자’(2009, 문학동네)가 있다.
우일문의 ‘고산자 김정호’는 “여지학에 뜻을 둔 소년 시절부터, 머리와 수염이 허옇게 센 장년이 되어 마침내 필생의 역작 ‘대동여지도’를 판각하게 되기까지 담담하게 그려간다.” 반면에 박범신의 ‘고산자’는 ‘한 사람의 삶을 외롭고(孤), 높으며(高), 옛산을 담고자 하는 마음(古)으로’백성을 위한 지도를 만들고자 했던 김정호의 영웅적 면모에 집중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그 사람의 일생을 바라보며 어디에 방점을 찍을 것인가로 달리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작가의 말처럼 ‘고산자 김정호’는 김정호라는 주인공의 영웅적 측면에 주목하기 보다는 김정호라는 사람이 여지학에 몰두하고 끝내는 ‘대동여지도’를 만들 수 있도록 그 일상을 함께했을 사람들도 함께 바라본다. 그러기에 영웅 김정호도 없고 “갈등구조도 약하며 클라이맥스도 없다.그저 담담하게 김정호를 들여다보려고 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렇게 담담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오롯이 한 인간이 걸어온 길을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박범신의 ‘고산자’를 원작으로 하는 강우석의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김정호에 주목하여 김정호의 무엇을 바라보고자 함일까? 우리시대 김정호라는 한 지리학자의 삶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롯이 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 본 이후에야 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로 그 당시 조선의 길을 열었다면 헬조선으로 불리는 우리시대에 필요한 지도에는 무엇이 담겨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