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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 ㅣ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8
서진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8월
평점 :
조용히 흘러 싸늘하게 식어간 시간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가끔 페이스북에서 작가 서진연의 이야기를 접했다. 그것이 이 소설을 손에 들게 한 이유라면 미흡할까. 굳이 다른 이유를 찾는다면 나무옆의자 출판사의 '고품격 로맨스 소설 시리즈 로망컬렉션'의 여덟 번째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전 작품들을 접하며 사람의 마음자리의 다른 모습들을 확인했다는 기대감이리라.
"'수목원'은 잊었다고 생각한 과거의 연인 히데오와 함께 갔던 수목원을 우연히 TV에서 보고 관련된 기억이 하나둘씩 떠올라 마침내 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가 동일본 대지진 직후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터전을 잃은 뒤 떠나거나 남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쓰게 된 작품"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로 이별을 하고 그와 살던 일본을 떠나 자신이 태어난 한국으로 돌아온 이수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 후 일에 묻혀 살면서 일 속에서 만난 사람과 애써 확인하지 못하는 사랑을 하고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을 나날들을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날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도쿄에서 오사카로 가는 길에 연인이었던 히데오와 들른 수목원의 모습을 보면서 옛 사랑에 대해 다시 떠올리는 계기가 된다. 그 후 돌발적이지만 잠정되어 있던 여행을 떠나고 돌아온 후 사직서를 제출하고 일본으로 가서 옛 사랑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묻혀질뻔 했던 사랑의 본류에 들어선다.
이 이야기의 흐름 속에 주목하는 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야기되는 일련의 인간성 파괴의 현장이다.같은 맥락에서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기저로 해서 진행되는 사랑이야기다. “주인공 이수는 내연의 관계인 재영과 신입 사원인 차 대리와의 관계가 의심스럽고, 재영의 아내 역시 만삭의 몸으로 이수를 찾아와 그들 사이를 의심하며 이수에게 하소연한다.” 그렇고 그런 삼류연애소설의 통속적 흐름이다.
이렇듯 사회적 통념을 벗어난 사랑과 이로부터 도피과정에서 옛사랑에 대한 묻힐뻔 한 속내를 알고 다시 그 옛사랑을 찾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이야기로 읽힌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피폐해지는 인간의 삶이 한 요소이기는 하나 그것 역시 특별한 것이 되지 못하고 있다. 발간한 출판사가 의도한 ‘고품격 로맨스 소설’측면에서도 보더라도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의 사랑이야기와 꼭 빼닮은 사랑을 하고 그로부터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그 사랑을 찾아간다는 것이 수목원의 연리목이라는 막연한 개연성에 의지할 뿐 ‘애써 확인하지 못하는 사랑’에서 도피하는 곳이 옛 사랑을 찾아 떠난 모습으로 읽혀진다. 무엇하나 정리해내지 못하고 도망치듯 일상에서 떠난 것으로 “조용히 흘러 싸늘하게 식어간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그러기에 사랑은 고품격 로맨스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현실임을 확인한다. 그 현실을 바탕으로 관계 사이에 이뤄내 가는 것이 사랑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