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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 그해,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 개정판
한강 지음 / 열림원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랑,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
작가 한강의 이름은 가끔씩 들었다. 작품을 읽은 이들의 책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다.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채식주의자', '내 여자의 열매', '여수의 사랑', '바람이 분다, 가라', '소년이 온다', '흰'은 그렇게 수집한 작품들이다.
작가 한강의 작품들을 읽어가는 동안 알 수 없는 갈증이 일었다. 인간의 본성에 접근해가는 방식이나 주목하는 내용과 그것을 풀어가는 작가만의 방식에서 따라가기 버거운 감정의 흐름에 잠시 책을 놓곤 했다. 작품이 작가의 감정과 의지를 소설적 장치에 의해 풀어내는 것과 만나는 어색함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 근원적인 무엇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것이 작가가 펴낸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라는2003년에 발간된 산문집이다.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은 1998년 미국 이이오와 대학에서 주최한 국제창작 프로그램(IWP)에 참가하여 세계 열여덟 나라에서 온 시인과 소설가들을 만나는 동안 그곳에서 겪었던 사람과 자신의 기억을 담았다.
열일곱 가지의 이야기에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감정과 의지가 있다. 그 감정과 의지를 읽어내는 작가의 감정과 의지가 만나는 지점은 어디일까? 작가 한강이 그 시간을 기억하는 키워드는 ‘사랑’이다. “사랑을 둘러싼 이별, 배신, 질투 같은 것들이 괴로운 것이지 사랑 그 자체는 그렇지 않다고.”하는 사랑에 관한 관점에서 어디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모든 기억들이 단편으로 부서지고, 형태를 잃어간다. 조용히, 시간의 풍화 속에 흩어진다. 나는 흥얼거린다. 나는 기억하는 사람, 모두가 잊은 것들을 기억하는 사람,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을 때까지, 다만 그때까지.”
시간을 기억한다. 그 시간 속에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사랑이다. 사랑 그 자체가 고통이라면 모든 기억이 다 고통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버거운 삶을 살아가더라도 사랑은 그렇지 않음을 믿기에 그 사랑에 희망을 거는 것이다. 그 출발은 어디에 있을까? 시간과 공간을 함께했던 그것을 기억하는 일, 바로 여기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하여, 시공간을 함께했던 사랑과 그 사랑을 둘러싼 모든 것 속에서 사랑의 본질을 찾는 일은 자신의 삶을 사랑으로 가꿔가는 중요한 출발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