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의 시각으로 본 사랑방정식
'내 여자의 열매', '여수의 사랑'을 통해 작가의 이른 시기 작품을 접했다. 열 네 편의 단편은 '다 다르지만 모두 같음'으로 읽힌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한강의 단편들을 통해 다소 멍한 머리와 답답한 가슴으로 작가가 맞았던 바람과 맞서보려고 한다. 날려버릴 수 있을까?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단짝 친구 이정희와 서인주의 이야기다. 사고 후 칩거, 그 친구를 곁에서 돌보며 별을 공부한 삼촌과 그림을 그린다. 삼촌의 죽음, 혼란스러운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어느 겨울 폭설 속 미시령 고개에서 서인주가 돌연한 죽음을 맞는다. 이정희는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줄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인주와 외삼촌의 그림과 자료가 남겨진 작업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낡은 사진 한 장과 그 뒤에 적힌 암호 같은 메모에 의지해 이정희는 상담소 소장 류인섭의 존재를 알게 된다. 정희는 인주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하고 서인주의 죽음을 신화화하고자 하는 미술평론가 강석원과 대립하며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찾아 나선다.
이정희, 서인주, 삼촌의 이야기가 다소 지리멸멸하게 이어지는 듯싶은 중반을 넘어 후반에 이르는 동안까지 이야기의 흐름을 좀처럼 잡아내기 힘들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주 이야기 등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이 강석원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사랑했지만 가족으로도 연인으로도 나설 수 없었던 외삼촌의 죽음과 친구의 잠적 앞에서 망연자실했던 이정희는 갑작스런 친구 서인주의 죽음 앞에서 또다시 무력하게 선 채 가슴이 찢기는 고통을 겪게 된다. 나직하지만 근기 있는 호흡과 문장으로 미세한 숨결로 생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그려간다.
미시령 고개에서의 돌연한 인주의 죽음, 죽기 직전까지 인주가 몰두했던 먹그림, 그날 새벽 인주가 폭설의 미시령 고개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인주도 외삼촌도 암묵적으로 발설하지 않았던 인주의 엄마 이동선 어느 것 하나 간단치가 않다. 서인주를 사랑하지만 늘 언저리에 머물렀던 강석원이 이 복잡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갈 키워드를 쥐고 있다.
“나는 너를 몰랐다. 네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 하지만, 어쩌면 너도 나를 모른다고 느낄 때가 있었을까. 내가 너를 몰랐던 것보다 더.”
“삶 쪽으로 바람이 분다, 가라, 기어가라, 기어가라, 어떻게든지 가라.”
“각자가 믿는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마치 격렬한 투쟁을 치르듯 온몸으로 부딪치고 상처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강석원을 매개로 하여 밝혀진 서인주의 이정희에 대한 사랑과 이정희의 서인주에 대한 사랑이 만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상대방을 얼마나 알고 있고 그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 여자가 나눈 각기 다른 사랑의 변주가 버겁고 혼란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삶의 근본문제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