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악증소암노승'楓嶽贈小菴老僧
어약연비상하동魚躍鳶飛上下同
저반비색역비공這般非色亦非空
등한일소간신세等閑一笑看身世
독립사양만목중獨立斜陽萬木中

물고기는 뛰고 솔개는 날지만 위 아래가 같도다
이 모습은 정녕 색도 공도 아니로세
한가히 웃음 짓고 내 몸을 돌아보니
해 비낀 숲속에 나 홀로 서 있네

*율곡 이이 (李珥, 1536년 ~ 1584년)의 '풍악산 작은 암자의 노승에게 주다'라는 제목의 시다. 율곡은 16세에 어머니 사임당 신씨를 여의고 3년상을 치른 뒤 금강산에 들어가 불가와 인연을 맺는다. 이 시는 그 무렵 어느 작은 암자에서 노승을 만나 불교와 유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당신은 시속의 선비가 아니오. 나를 위하여 시를 지어서,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글귀의 뜻을 해석하여 주시오.」라는 노승의 부탁으로 지어진 시라고 한다.

*사용하던 서재를 비워 집을 찾는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새로이 옮겨 마련한 서재다. 이 서재는 좌우로 문이 나 있어 방 세칸이 다 이어져 있다. 동으로난 문은 책장으로 가리고 서쪽으로 난 문은 다탁을 놓아 문의 기능을 잠정적으로 정지시켜두었다. 

문은 소통과 단절을 동시에 품는다. 밖과 안을 구분하기도 하고 이어주기도 하는 문이다. 그 사이 살을 대고 창호지를 발라 빛이 스며들게 했다. 닫고 여는 것도 율곡이 말한 上下同 위 아래가 같다는 그 이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삼배 위에 바늘과 실을 엮어 마음을 담은 나무 그림을 그 문에 걸었다. 

'바늘과 실을 엮어 마음을 담은 나무'는 시간을 겹으로 쌓아가는 동안 튼튼하게 뿌리를 내렸다. 그 사이 몸통과 키도 키웠다. 제법 넓어진 그늘에 다른 생명이 꽃 피울 자리도 마런한 시간이다. 가지에 새싹을 내어 다시 시간을 쌓아간다.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가 저 나무의 품에서 이뤄진다. 마음 속에 심어 가꾸는 그 나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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