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뮈로부터 온 편지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6년 3월
평점 :
번역, 새로운 창작일까?
문학이 어려운 내게는 서양고전은 매우 어려운 장르가 분명하다. 몇 해 전 인터넷 사이트에서 고전읽기 모임에 참여하며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동서양의 고전을 익을 기회가 있었다. 나름 유서 깊은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이었으니 번역에 있어서도 검증을 거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품을 읽을 때마다 책장을 넘기기가 버거울 정도로 이야기의 내용을 따라가기가 어려웠었다. 문학에 어려움을 갖고 있는 나의 특성일 것이라고 봤지만 토론 과정에서 매번 등장하는 것이 번역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고전, 특히 서양고전에 유독 어려움을 겪는 것이 개인의 특성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이후론 번역자가 누구인가를 살피게 된 것이 변화된 상황이었다.
최근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국제상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놀란 것이 하나 있다. 맨부커국제상이 대상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에게도 원작자와 똑같은 상을 수여한다는 점이다. 한강의 작품을 번역했던 ‘데보라 스미스’역시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는 번역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여겨진다.
이정서의 ‘카뮈로부터 온 편지’는 이처럼 다른 언어권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번역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는 소설이다. 이 작품을 발표한 이정서는 2014년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오역을 지적한 ‘역자노트’를 실은 ‘이방인’을 출간함으로써 ‘번역도 문학’임을 알리는 의미 있는 번역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2015년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의 시공간적·존칭 개념을 바로잡아 차별화된 번역을 선보이며 화제의 중심에 오른 사람이기도 하다.
‘카뮈로부터 온 편지’는 바로 그 문제의 번역 ‘이방인’이 새롭게 발간되는 과정을 소설화 해서 발표한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 이윤이 죽은 카뮈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무리 번역이라고 해도 원래 작가의 문장은 하나이며, 그 속에 담고 있는 의미도 하나이니 역자는 그‘하나뿐인’ 원뜻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 당연”
기존에 번역된 문장과 원문과의 비교, 작가의 새로운 번역이 필요했던 이유 등을 비교분석하면서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 타당한 이유를 밝혀가고 있다. 때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원 작가의 뜻을 살펴 이를 최대한 살려내고자 하는 어렵고 지난한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가고 있다.
번역이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원 작가의 작품에 담았던 의도를 벗어난 번역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번역자의 시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야기 흐름도 내용도 못 따라가게 만드는 번역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계기를 제공하는 의미에서 흥미를 넘어서 주목할 만한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