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ᆢ
아빠는 외로운 것이 아니란다.

검푸른 가을밤 무릎에 올린 거문고의 술대에 감기는 현에 유난히 무게가 실리는 것이 느껴지지 않느냐? 가을이 주는 행복을 누리는 것으로 그 무게를 온전히 현의 울림으로 담아내는 것만한 것도 없으리라고 본다.

아빠는 이른아침 발길에 차이는 이슬이 무게를 더해가는 것을 느끼고, 해질녘 붉은 노을이 저 혼자 붉은게 아님을 알듯이 오늘 이 시간을 살아가는 나를 돌아보며 스스로 위안삼는 것으로 이 가을을 누리고자 한다. 너에게 있어 거문고 연주처럼 이 아빠도 가을이 주는 그 행복을 마음껏 누리려는 것뿐이다. 

딸아ᆢ
너도 이제, 행복은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것만이 아님을 어림짐작으로나마 알 것이라고 믿는다. 아빠가 누리는 그 행복의 중심에 딸, 네가 있어 너의 안부가 궁금하고 네 무릎위에 놓인 거문고 현을 울리는 술대에 힘을 실리길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너에게 아빠가 가을타는 외로움으로 비쳤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렇게나마 아빠의 심사를 짐작해보려는 너의 마음이 가상하다.

가을은 외롭고 쓸쓸함만을 주는 시간이 아니란다. 풍성한 열매도 있고 따스한 햇볕도 있다. 아스라이 하루를 밝히는 안개도 있고, 풍덩 빠지고 싶은 푸르디 푸른 하늘도 있으며 눈시울 붉히는 붉디붉은 노을도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이 가을을 외면하지 말거라. 그것이 눈부신 햇살로 만물을 영글게하고, 다가올 추위를 대비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좁혀주는 이 가을에게 덜 미안한 일이다.

딸아ᆢ시간이 지나서 다시 이 가을이 올 무렵에는 내 피리 소리에 너의 거문고 음을 얹어볼 날이 오길 바란다. 곡으로 '수연장지곡'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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