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 - 전영관.탁기형 공감포토에세이
전영관 지음, 탁기형 사진 / 푸른영토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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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그대, 나를 만나는 시간

이 사내를 양도 합니다로 시작하는 공고를 냈다. 나 이런 사람임을 밝혀 내가 쓴 글이 당신의 마음에 혹 있을지도 모를 불편함에 대한 저항을 차단이라도 하려는 걸까? '공고'라는 머릿말에서 나는 한 페이지도 더 나가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무엇이 날 붙잡고 있는지를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다시 읽기를 반복한다. 여기서 멈춘다면 자신을 양도한다고 공고한 저자의 바람과는 사뭇 어긋난 지점에 서 있는 것일까? 다소 머뭇거리며 책장을 넘긴다.

 

익숙지 않은 문장과 문장 사이를 연결하기엔 긴 호흡이 필요하다. 천천히 아주 심사숙고해서 읽어야 머리로 이해하고 심장에 이르는 더딘 걸음걸이를 감내해야 한다. 하여, 애서 걸어온 문장으로 다시금 되돌아가야 한다.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어 보인다. 그렇더라도 문장을 놓치지 않고 더딘 걸음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전영관의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은 이렇게 불편한 책이다. 살아오는 동안 가슴 쓰리기에 붙잡아두기 싫어 외면했던 수많은 감정들을 천천히 곱씹도록 만들고 있다. 더디지만 그럴수록 깊이 있는 소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공감이다. 공감이 이뤄져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기에 이 공감을 불러오는 과정이 더디다는 것은 소통에 장애로 작용한다. 무엇이든 쉽고 빠른 것만이 능사인 현대사회에서 이런 불편함은 역으로 깊은 공감을 위한 전재조건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곱씹어서 깊은 공감을 일으키고 이를 바탕으로 소통을 이뤘을 때 스스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기에 전영관의 글이 가지는 매력 여기에 있다고 여겨진다.

 

사랑에 대한 부재증명’, ‘세상의 무늬들’, ‘맑은 거울을 찾아서로 구분된 이야기 속에는 누구나 겪는 일상에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불편과 불안한 요소들에 대해 자기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자기성찰의 근본요구는 상처로부터 치유에 있기에 자신의 상처를 직시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힐링이라는 말이 만병통치약처럼 사람들의 허약한 내명으로 파고드는 이 시대에 애써 상처로 돌아가게 만들기에 그의 이야기는 쓴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저자의 힐링프로그램을 찾을 시간이 있다면 고요히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라는 저자의 완곡함에 신뢰가 간다. 더불어 또 한명의 저자인 한겨레신문의 탁기형 기자의 사진은 전영관의 글과 어우러져 보다 깊은 자기성찰로 이끌며 때론 전영관의 글과 독자를 이어주는 든든한 다리 역할까지 하고 있다.

 

416일 이후 온 나라가 슬픔과 비탄에 빠진 가을의 초입에서 국민들의 집단적 상처를 치유할 무엇도 찾기 어렵다. 무엇을 어떻게 스스로 찾아야 하는지 반문해 본다. 마음의 상처는 다른 사람에 의해 치유되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이를 이겨낼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냉정히 우리의 현주소를 살펴 국가와 사회가 주는 상철르 치유할 방안을 모색하여 스스로 얻어낼 때 가능한 것이다. 더불어 개인들의 삶 속에서 안고 살아가는 상처를 극복하는 일 역시 스스로의 힘을 믿을 때 시작할 수 있으며 가능한 일이 된다. 이 가을 이 책과 더불어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져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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