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 운명과 저항의 갈림길에 선 조선 여성들의 내면 읽기
임유경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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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힘, 사회를 변혁한다

조선의 여성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황진이, 매창, 두향과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선 기생으로 당대 걸출한 사내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말고도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을 것이지만 조선의 여성에 주목한 이야기가 다분히 흥밋거리로 다뤄지는 것 말고는 별로 없었다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조선사회가 남성위주 가부장적 사회였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조선 중반기를 넘어서 성리학이 자리 잡은 후 일이니 조선전기나 그 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지만 기록으로 남겨진 것조차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선을 이해하기 위해 그간 왕조중심 연구에서 벗어나 그 폭을 넓혀 조선을 구성한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로 확장되는 사회적 분위기의 여파로 조금씩 그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은 실로 다행이라 여겨진다. 그 중에서도 사회 기층을 구성했던 천민에 속한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려는 움직임은 반갑기만 하다.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저자 임유경의 책조선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여성이라 하면 여필종부(女必從夫), 삼종지도(三從之道), 현모양처(賢母良妻), 출가외인(出嫁外人), 칠거지악(七去之惡) 등의 유교 사상에 따라 살아가는 순종적인 모습이 그려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모습으로만 조선시대를 살았던 여성을 이해한다면 한쪽에 치우친 편협한 해석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서른여덟 가지 키워드로 조선 여성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여성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글을 배워 학문에서 당당한 목소리를 낸 사람들로부터 기생, 일반 가정집 아녀자,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샤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저자가 참고한 것은 여성 스스로 남긴 글을 묶은 문집이거나 양반 사대부들의 기록에서 찾았다. 주로 편지나 수필, 주변 사람들이 남겨놓은 글들이다. 그 주인공들은 기생이나 다모와 같은 천한 직업의 여성부터 양반 규슈와 고귀한 왕실의 공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등장하고 있다.

 

사대부 남편을 면박주면서도 당당했던 송덕봉, “여자로 태어났다고 장차 방안 깊숙이 문을 닫고 경법만을 지키며 사는 것이 옳은가. 한미한 집안에 났다고 분수를 지키면서 이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옳은가라며 되묻고 자신만의 길을 떠난 김금원, 여자에게 글을 멀리하게끔 강요하던 조선에서 스스로 학자가 되기를 꿈꾼 강정일당, ‘제주도 여자는 육지에 오를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금강산에 오른 김만덕, 한 남자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산 황진이 등이 나온다. 주목되는 사람으로는 이 책에 등장하는 유희춘과 송덕봉, 함께 시를 논하고 서로를 아꼈던 부부다. 부인은 책에 빠진 남편에게 아름다운 봄의 경치, 달 아래 거문고, 근심을 잊게 하는 술의 즐거움도 놓칠 수 없는 것인데 어찌 책에만 빠져 있겠느냐고 했다. 부창부수다. 오늘날에도 이런 부부는 있을 것이다.

 

이들의 당당한 행보는 자신들을 옭아매는 부당한 현실에 순응하지 않는 자세 때문이라고 보았다. 한 사람의 작은 실천은 기록으로 남아 또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도약하게끔 했으며, 이것이 결국 조선시대 500년을 지배한 유교 윤리와 열녀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원문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저자의 해설을 곁들여 한 여성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현대를 비교하여 한계와 아쉬운 점을 밝히고 있다. 다소 저자와 독자 간에 시각차가 존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자신을 얽매고 있는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당당한 자신만의 삶을 추구했던 여성들의 삶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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