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귀신의 노래 -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
곽재구 지음 / 열림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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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

화려한 꽃, 향기 좋은 들풀, 저녁노을, 찬란한 일출, 살랑거리는 바람, 포근하게 내리는 눈...... 이 모두의 공통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듯 자연은 사람들에게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깊고 오래가며 따스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 공유하며 소통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얻는 아름다움이다. 이것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귀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을 알고 나누며 누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아니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기준에서는 이러한 아름다움을 모두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단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전하지 못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다고 한다. 이 말을 다시 한다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무엇을 하든 주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스며들게 하는 사람인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도중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가슴의 따스함을 전한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을 일이지만 그들은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들 살아간다.

 

글을 통해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은 책을 보는 재미 중 빼놓을 수없는 즐거움 중 하나다. “사평역에서”라는 시로 우리들에게 익숙한 시인 곽재구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 중 한 명으로 다가온다.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라고 부제를 단 “길귀신의 노래”라는 그의 산문집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다. 시인 곽재구는 전작 ‘곽재구의 포구기행’, ‘곽재구의 예술기행’ 등의 산문집을 통해 널리 독자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시세계를 그려가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전작들이 모두 길 위를 걸어가는 동안 만날 수 있는 것을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 신작 “길귀신의 노래”역시 길 위에서 만났던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길귀신의 노래”는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 자신이 걸어온 삶의 여정, 자신이 좋아하는 바닷가인 순천만 와온 마을과 여수 바다, 해외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신의 시 ‘사평역에서’에 대한 작가노트라 할 수 있는 이야기까지 따스한 마음이 담긴 이야기들이다. 자신의 대표시 ‘사평역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은 역 이름인 사평역이 왜 사평역인지를 비롯하여 시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어 시인의 이 시에 대한 속내를 알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또한 순천만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바닷가 풍경이 눈에 그려질 듯 섬세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을 그 바닷가로 이끄는 매력이 있다. 그곳을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만들지만 발걸음은 그리 쉽게 옮기지 못할 것 같다. 시인의 감성으로 바라본 바닷가의 마을들에서 담은 그 따스함을 내 가슴에 담아야만 가능한 여행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길귀신이라는 말을 듣고 조금 움찔했을 이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냥 길동무라고 해도 좋겠지만 이들이 이 지상에 머물렀을 시간을 생각하면 동무라는 말이 한없이 친근하고 포근해도, 그냥 귀신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은 것입니다. 길 위에 서면 나는 이 셋의 사랑스런 길귀신들에게 내 마음의 혼을 모아 다정하게 인사하는 것입니다.”

 

삶은 여행길이라고도 한다. 지구라는 공간에 세월이라는 시간이 더해지며 자신의 삶이 곧 여행인 샘이다. 그렇게 본다면 누구라도 여행자이며 그 길에서 만나는 모든 풍경과 사람들이 길동무일텐데 길귀신이라고 한 이유가 뭘까? 그 이유가 바로 시인 곽재구를 곽재구이게 만드는 것이라 여겨진다. “길귀신의 노래”는 자연이 만들어 낸 풍경과 그 속에서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벌 줄 아는 사람, 시인 곽재구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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