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마치 - 진옥섭의 사무치다
진옥섭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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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지켜낸 명인열전

꿈, 희망, 도대체 이것들은 뭘까? 너무 뻔한 물음이라서 어쩜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어느 언저리에서라도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는 늘 함께할 수 있기에 위안 삼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지나온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삶의 마지막 자리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후대들에게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정답이 없는 삶만큼 이 물음 또한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누군가의 삶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을 대신하여 꿈과 희망이라는 긍정의 힘을 배우고 그 힘에 의지해 살아갈 수 있다.

 

보통 꿈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일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그러한 꿈은 상대적 계념에 불과할 뿐이다. 삶이 어떤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비추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믿고 의지한 가치관이 의미 있을 때 어쩌면 그런 사람들만이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진짜 꿈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그런 사람들의 삶을 추적한 한 사람이 있다. 전통예술 연출가라는 진옥섭이 그다. 연극과 탈춤을 통해 전통과 인연 맺은 후로 줄곧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사람으로 보인다. 하여 그가 찾아낸 각 방면의 사람들의 면면이 이 책 ‘노름마치’의 자자인 진옥섭에게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노름마치’는 최고의 잽이(연주자)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로 ‘그가 나와서 한판 놀면 뒤에 누가 나서는 것이 무의미해 결국 판을 맺어야 하는데, 이때 놀음을 마치게 하는 고수 중의 고수’를 칭하는 말이‘노름마치’라는 것이다. 저자가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고 무대를 만들어 대중들 앞에 세워왔다. 1993년부터 시작하여 최근 2013년까지의 소식이 담겼다. 이제는 소리나 영상만을 남기고 먼 세상으로 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도 있다. 저자 진옥섭이 발품을 팔아 찾아낸 ‘노름마치’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 이것은 사라져가는 전통을 흐름을 거슬러 되 쫒아가는 일이 된다.

 

예기(藝妓), 남무(男舞), 득음(得音), 유랑(流浪), 강신(降神), 풍류(風流) 이 속에 어쩌면 전통의 거의 모든 부분이 포함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각 부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명인들의 이야기이기에 전통예술의 인적흐름을 이 한 권에 담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녀, 무당, 광대 등으로 사회적 편견을 이겨내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선택할 길이라기보다는 몸이 먼저 알고 따르니 어쩔 수 없이 삶을 송두리째 내맡긴 경우도 많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그에 걸맞는 사회적 인식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기에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그 업을 놓지 못한 것은 아닐까?

 

장금도, 유금선, 심화영, 문장원, 하용부, 김덕명, 정광수, 한승호, 한애순, 김운태, 공옥진, 강준섭, 김유감, 이상순, 김금화, 이윤석, 정영만, 김수악 대부분 낯선 사람들이다. 하지만 저자 진옥섭이 ‘노름마치’로 찾아 만난 사람들이다. 이 책을 통해 만나는 그들의 삶이 진한 향기를 전해준다. 이들뿐 아니라 이들과 함께 해온 우리시대 전통 파수꾼들의 이야기를 만난다.

 

깊어가는 가을, 도처에서 문화예술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놓치지 않고 참여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올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만 하지만 이내 잊혀지고 만다. 여기에 등장하는 노름마치들 역시 시간이 흐르며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몸의 언어는 시대에 걸맞는 모습으로 이어져 우리의 전통을 만들어 왔듯이 앞으로도 그들 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지속될 것임은 의심치 않는다.

 

다시 꿈,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다. 시간이라는 사슬에 묶여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 남긴 진한 흔적은 이제 전통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가슴에 먹빛으로 새겨져 다시 사람들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화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았다. 무엇이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 속에 자리 잡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노름마치’들의 삶을 통해 재현되리라는 믿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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