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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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도 죽지도 않고

혹자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을 바랄지도 모른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치곤 그러한 삶을 반기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왜 그럴까? 유한한 목숨을 아쉬워하며 천년이라도 살 것처럼 날뛰는 사람들조차 막상 늙지도 죽지도 않고 살아간다면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과언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말이다. 불생불멸하는 것은 없다. 생명 있는 존재는 언제나 그 끝을 향해 질주하는 것이다. 하여, 짧은 삶에 대해 애착을 가지게 되며 살아있을 때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늙지도 죽지도 않고’를 가정한다면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김대현의 ‘홍도’를 통해 그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홍도는 동현이라는 영화감독이 비행기 안에서 433살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한 여인 ‘홍도’를 만나면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기축옥사’의 중니공인 정여립에 관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는 동현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시나리오에 관심을 보이는 홍도와 헬싱키 반타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 비행기 안에서 8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가 중심이다.

 

'1580년생이시면 올해로 433살'이라는 홍도의 이야기는 잘 꾸며낸 이야기꾼의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임진왜란, 일본 생활, 천주교박해 등을 겪고 진주만, 암스테르담, 핀란드 등으로 이어지는 홍도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점점 그 속에 빠져드는 명현의 마음은 혼란스럽다. 여인 홍도가 살아온 시간 433년은 어떻게 보면 ‘살아온’ 것이 아니라 ‘살아진’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짧은 것이 시간이지만 홍도에게 시간은 언제나 넉넉하다. 그러기에 그녀는 주체적으로 살아간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저절로 살아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끝이 보장 되지 않은 삶이 주는 또 다른 무게감에 눌려 보낸 시간으로 보인다. 그것은 죽지 못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막무가내 식으로 살아온 시간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만 본다면 그저 그런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홍도’에게는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이름 지어준 ‘자치기’라는 사람과 신분을 훔쳤던 원수의 딸 정주옹주와 아버지다. 홍도를 이들을 만나 자신의 사랑을 실현한다. 혹시 환생하여 다시 만날지도 모를 그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어쩜 홍도에게 주어진 죽지 않은 시간은 아닐까?

 

‘역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역사에 대한 심오한 장악력’이라는 혼불문학상 심사평 중 하나다. 기축옥사에서 임진왜란과 천주교박해에 이르는 과정이 숨 가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대단한 흡입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홍도의 일상을 그려가는 과정이 다음에는 어떤 장면이 그려질지 마음이 앞서가는 것도 있다. 그렇더라도 홍도의 여정에는 개연성이 짙어 무엇인가 빠진 듯 한 느낌을 지을 수 없다. 무엇이 빠졌을까? ‘늙지도 죽지도 않고’라는 시간 속에 노출된 한 사람의 진정성이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그려진 것은 아닌가 싶다. ‘늙지도 죽지도 않고’에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그런 숙명 속에 살아가는 사람에게 피하지 못할 숙제가 아닐까?

 

‘늙지도 죽지도 않고’살아가는 주인공에게 독자인 내가 기대하는 것은 그런 숙명을 자신의 삶 속에 어떻게 실현해가는 가에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허전함이 있다. 인천공항에서 내려 헤어질 시점에서 동현이라는 사람이 환생한 ‘자치기’라는 설정의 다소 억지스러움이 어쩌면 이 소설의 한계는 아닐까? 사랑 하나로 ‘늙지도 죽지도 않고’를 그려내기에 허전함이 있어 보인다. 소설은 작가의 손을 떠난 시점부터 독자의 몫이라면 독자인 한 사람으로 주목하는 것을 스스로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 좋은 화두를 삼을 수 있게 해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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