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1~9 완간 박스 세트 - 전9권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미생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가을쯤에 와 있는 내 삶 들여다보기

달빛이 좋다. 정신을 놓지 않을 만큼의 기온에 고즈넉한 밤하늘을 밝히고 있는 가을밤이 주는 선물이기에 마음껏 누리는 것도 덜 미안할 수 있다. 이런 시간이면 지나간 시간을 회고하며 자신을 성찰하기에도 좋을 것이다. 길지 않았던 내 삶도 계절로 치자면 이 가을쯤 되지 않을까 싶다. 되돌아보면 아쉽지 않은 삶은 없을지라도 굳이 아쉬움을 앞세워 자신을 탓하기엔 남은 시간이 아까울 것 같아 주어진 오늘을 더 알차게 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삶을 돌아보게 되는 기회는 특별한 무엇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무엇이든 자신과 얽힌 인연의 고리에 의해 자신을 성찰하며 내일을 계획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만화에 혹하는 아이들 말고라도 만화가 이현세나 박봉성을 기억하는 또래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의 만화에서 역사를 배우고 일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뜬금없이 만화이야기를 하는 것은 최근 접했던 한편의 만화가 이현세나 박봉성의 만화에 심취해 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했으며 이렇게 달빛이 좋은 밤 자신을 성찰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생’ 만화다. 바둑의 이야기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접목하여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삶의 모습을 엮어내고 있다. 특기난이 공란이며 고졸이라는 조건은 온갖 스펙을 쌓고 출발하는 다른 동료들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초라할 수밖에 없다. 그런 주인공 ‘장그래’가 겪는 사회생활은 상상을 불허하는 악조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그가 숨기고 싶은 과거 바둑에서 얻은 교훈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인턴, 대리, 과장, 차장 그리고 부장 등으로 구성된 회사라는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든 이미 젖어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기에도 급급해 하는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그 속에서의 삶의 희노애락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인생의 다른 무엇이 아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바둑은 어쩜 치열한 답을 구하는 현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충분히 흥미를 넘어서 주목할 수 있는 내용이기에 만화의 제목 ‘미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다. 바둑에서는 두 집을 만들어야 ‘완생(完生)’이라 말한다. 두 집을 만들기 전은 모두 ‘미생(未生)’ 즉,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말, 상대로부터 공격받을 여지가 있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삶은 ‘미생’에서 ‘완생’으로 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한다.

 

바둑을 아는 사람에게 이 책은 특별한 즐거움을 함께 선사하고 있다. 제1회 응씨배에서 결승에 오른 한국의 조훈현과 중국의 녜웨이핑의 최종대국을 기보와 함게 해설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한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의 주인공이 펼쳐나가는 삶과 기보를 통한 바둑의 해설이 교류되는 지점이 묘하게 연결되며 내용의 탄력을 더해간다. 그 느낌이 상당하다. 긴장감과 넉넉한 웃음이 함께하는 이 ‘미생’에서 다양한 독자들이 자신의 일상을 비춰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고백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게 다가온다. 만화라는 다소 열린 구조에 삶의 본질이라는 깊이를 더해 누구나 관심 가질 만 한 현실의 문제를 공유할 수 있다는 구조가 잘 어울려 회자되는 작품으로 탄생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을 쯤 될 것 같은 내 삶의 지점에서 만난 ‘미생’이라는 작품은 내 삶과 구체적 행보가 조금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내 삶에도 공유되는 부분이 충분하기에 달빛에 취한 이 밤 다시 손에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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