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자의 꿈, 실크로드 - 봉인된 과거와 열린 미래로의 황홀한 시간 여행
문윤정 글.사진 / 바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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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실크로드라는 시간 위에 선 여행자

무수히 많은 여행에세이가 있다. 다양한 이유로 매어 사는 현대인들에게 여행이 화두로 등장하면서부터 낫선 여행길에 선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매어 사는 삶이 그만큼 풀어낼 이야기가 많아서가 주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여행이 현실에 매이고 묻혀 있던 스스로를 발견하게 하고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여행의 바로 이 점이 다양한 이유로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이젠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굳이 국경을 넘어 해외로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면 현대인 누구나 삶이 여행이듯 그 여행의 길 위에서 걷고 있는 중이라고 본다.

 

그런 여행길에서 보고 느낀 다양한 체험을 글로 담아 내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여행에세이라면 그 많은 여행자들이 내놓는 글들이 몇 가지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지를 소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과 여행길에서 자신과의 만남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말이다. 물론 이 둘 사이는 상시 넘나들며 상호작용하기에 여행길에 선 당사자에겐 그리 다른 것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오로지 여행자가 내 놓은 글을 통해 만나는 낫선 여행지는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여행자가 여행길 위해서 보고 느낀 것을 통해 독자는 자신만의 여행길을 가는 것이기에 독자의 몫은 저자의 이야기를 떠난 자신이 감당하는 몫만큼 받아들이고 체험하는 것이다.

 

봉인된 과거와 열린 미래로의 황홀한 시간 여행이라는 부제를 단 ‘걷는 자의 꿈, 실크로드’는 옛날의 영화를 간직하고도 숨죽이고 있는 실크로드를 서쪽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길을 나선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크로드는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삶과 죽음 사이의 ‘시간 여행’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시간 여행을 저자는 봉인된 과거와 열린 미래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발길이 닺는 실크로드의 모든 곳은 봉인된 과거에 집중하며 열린 미래의 가능성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목숨을 담보로 할 수밖에 없었던 옛 실크로드 여행자들의 고단함이 잠시 쉬던 곳들에 남겨진 흔적들을 찾아보고 셀 수도 없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시간을 봉인한 체 갇혀 있는 듯 존재감을 지켜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감싸 안은 자연이 공유하는 역사는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윤정의 ‘걷는 자의 꿈, 실크로드’는 파키스탄의 라호르, 이슬라마바드, 탁실라, 카라코람하이웨이, 길기트, 훈자마을, 소스트에 잠시 머물다 중국의 탁스쿠르칸, 카슈가르, 우루무치, 타클라마칸사막, 투루판, 돈황, 란주, 천수, 시안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대장정을 시작한 저자의 발길이 머무는 곳으로 안내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기지만 시간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뜨거운 사막,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선 산, 천 길 낭떠러지의 길의 실크로드의 그것도 마찬가지리라. 이미 사라졌고 지금도 사라지고 있는 흔적들이 가픈 숨을 몰아쉬고 있는 현장에서도 시간을 멈춘 듯 여전히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지만 이미 예전의 그 삶은 아니다. 발길이 머무는 곳 마다 찾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친절한 미소가 낫선 여행길에 선 여행자의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어쩌면 시간 앞에 속절없는 모든 것을 대신하여 여전히 사람들을 살아가게 만드는 요소가 아닌지. 저자도 그 따스한 미소 앞에 여행자의 조심성마저 한없이 풀어지고 있다.

 

실크로드라는 여행지를 소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여행에세이는 풍경을 바라보는 객관자의 입장이 더 강해 보인다. 풍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와 하나 되는 것보다는 그 풍경들을 바라보는 입장에 서서 관찰자로써의 자자의 시각이 강하다. 머뭄의 여행과 다른 점이 이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발길을 따라 가다보면 글로는 부족한 상상의 현장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사진은 그곳을 담아내지 못했다. 저자와 공감하는 부분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문명과 문명이 만나는 통로 ‘실크로드는 교류와 융합을 통해 동 서양이 상생해온 길이며, 동서남북을 소통시키고 인류역사의 어제를 오늘로 이어준 길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그 길에서 과거와 미래의 공존을 본다. 현실에 묶여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 같은 우리의 삶도 그 시간 속에서 공존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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