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곁 - 김창균의 엽서 한장
김창균 / 작가와비평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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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뭘까? 자신이 아직은 청춘이라고 생각하며 세상을 만만하게 볼 때와는 달리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과의 거리를 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내 삶속으로 세상을 끌어들여오기에 몰두하며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에 자신을 맡긴 것이라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내 속도를 찾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속도와 내 속도에 차이를 두고 거리를 둠으로써 생긴 거리만큼의 여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나이 들어가는 것을 바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러다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이 다시보이고 너무 가까워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달리 보이며 결국 자신 스스로를 돌아 볼 시간과 여유를 찾는 것이리라.

 

하여, 빈틈이 조금 생긴 그 속에 다시 세상과 사람들을 머물 수 있게 할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또는 주변 사람을 그 곁에 머물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그 공간에서 머물며 찾아오는 시간과 함께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무엇일 것이다. 이 시간과 공간은 그동안 내 곁에 잠시 머물렀다 지나간 시간과 사람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으며 이제는 다가올 시간과 사람들을 바라볼 때 조금 달라진 눈으로 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김창균의 ‘넉넉한 곁’이라는 사색의 결과물 역시 이와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무엇들과의 소통이 세상 속도에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도에서 조금 벗어날 때 보이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기별, 풍경, 길이라는 주제로 엮어진 김창균의 일상 엿보기는 그래서 넉넉함이 묻어난다.

 

그리워할 대상이 많다. 그리움의 대상은 살아온 시간에 비례해서 커져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지나간 시간 속 그리움을 결국 기다림으로 현재진행형이다. 환한 가난, 오래된 결혼식 풍경, 욕망이 떠나간 자리, 미뤄 두는 저녁, 따뜻한 국물, 연어에게, 그리움, 그 가혹한 설렘, 졸업, 절망과 눈 맞추기, 가을, 서늘한 노래, 절정에서 죽다, 씨 없는 수박, 북창 여관, 야만에 불 지르고 싶은 저녁 등 자신의 곁에 잠시 머물렀던 시간들과 장소가 기억 속에 남아 이젠 그리움으로 더 지나기다림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150여 편이 넘는 짤막한 글들 속에는 그가 돌아본 일상에는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세상과 만나는 저자의 모습이 그대로 담겼으며 그 모습은 자신이 발 붙이고 사는 생활 근거지에 충실하고 있다. 그래서 일상의 모습과 벗들이나 풍경들이 보인다.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 속에서 살아가는지 말이다. 향토색이 묻어나는 글 들 속에 저자의 태생적 삶의 근원이 보이고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삶의 무게가 버겁기도 하다.

 

하지만, 돌의 무게를 더해도 섬은 가라앉지 않듯이 우리들의 삶에 상처를 더해가도 그 삶은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음도 안다. 그렇더라도 내 곁에 빈 공간을 남김으로 인해 고은 시인의 시처럼‘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보지 못한 / 그 꽃’처럼 인생의 내리막길에 접어든 나이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며 삶을 꽃피워 주는지를 알아가는 것, 이것이 내 곁에 넉넉한 공간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이 짧막한 엽서들이 바로 그러한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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