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딩의 여덟째 날
리루이 지음, 배도임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문화의 충돌이 파괴하는 인간성

침탈의 근현대를 겪은 나라들이 겪는 대부분의 현상은 고유의 문화를 만들어왔던 나라들의 사람들에게 대단한 혼란을 안겨주었다. 특히, 사양의 제국주의가 날로 그 맹위를 떨치던 19세기의 아시아는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강한 물리력을 기반으로 한 서양 제국주의자들이 문명이나 종교의 탈을 쓰고 아시아의 나라들을 침략해 수천 년 이어온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데 앞장선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나라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양상으로 벌어진 것이다. 조선 정조 왕 이후 천주교에 대한 박해로 시작된 인간성에 대한 파괴는 어쩌면 문화의 충돌이 가져온 어쩔 수 없는 역사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종교라는 외피를 쓰고 자국의 이해요구를 관철시켜왔던 침략의 역사는 십자군전쟁처럼 종교의 이념을 넘어선 현실의 이해요구와 직결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오며 침략과 때론 문화적 강요를 서슴치 않았던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900년의 의화단 사건 전 후 근대 중국이 세계와 맞닥뜨리는 과정은 그야말로 광적이며 중화사상에 빠져있었던 중국에게는 굴욕적인 시기였다. 문학은 이런 시대적 경험을 놓치지 않고 무대로 끌어 들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각을 달리하는 두 부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민족적 시각에서 외래문화를 바라보는 것과 이와는 반대로 외래문화에 보다 적극적인 수용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그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관점보다는 자신이 살아온 곳과 살아갈 곳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바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서구 중심담론이나 그 문예이론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 중국인과 중국어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리는 행위라고 여기고 중국 문학의 토속성과 전통성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작가 리루이의 ‘장마딩의 여덟째 날’를 통해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리루이의 ‘장마딩의 여덟째 날’은 1900 전후 시기 의화단 사건이 일어나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류문명의 발전과정에서 외래종교외 토속신앙이 충돌하고 동화될 때 신성함과 뒤엉키게 되는 폭력, 그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의 욕망’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선교를 위해 가톨릭의 주교와 이를 따라온 수사는 중국에 온 이들은 하늘바윗골이라는 고장에서 강한 토속신앙의 저항에 부딪힌다. 이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주교는 무리수를 두게 되고 이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하여 사람이 죽게 된다. 장마딩은 젊은 수사의 중국이름이다. 종교적 맹목성이 불러온 파장은 그에 한 장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파괴에까지 이르게 된다.

 

문화적 충돌이라는 상황에서 피할 수 없이 겪게 되는 인간들의 혼란이 인간들의 삶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맹목적인 종교의 횡포, 정체성에 대한 도전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혼란과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파국 등 이런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인간은 어떤 미래를 기대해야 하는 걸까? 한과 슬픔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미래는 무엇일까? 작가 리루이는 여자 주인공을 나무대아를 타고 강을 따라 흘러 보내고 있다. 불안한 나무대아와 어디로 갈지 모른 강에 홀로선 인간의 모습은 ‘나의 세계는 여덟째 날부터 시작된 것이다’라는 장마딩의 묘지명의 그것과 연결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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