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기억의 공간 - [건축학개론]에 담긴 나를 위한 공간의 재발견
구승회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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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시간이 머무는 곳

통섭은 여전히 유효하며 날로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우리시대 화두라 할 수 있다. 전문적인 각자의 분야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면서도 다른 분야와 소통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이를 통해 새로운 주제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해 간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통섭을 굳이 학문이나 학자들의 엄격한 기준으로 기반이 되는 곳에 한정시키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과 구체적으로 만나는 모든 분야로 확대 할 때 통섭이 지향하는 바를 구체화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건축과 영화 어쩜 이처럼 다른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이 조화를 이뤄 만들어낸 한 편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가슴을 감동시켰다. 2012년 다소 버거운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동안 가슴을 적셨던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왔던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이 주인공이다. 흥행영화의 성과를 이어 받아 영화 속 ‘서연의 집’을 건축한 건축가 구승회의 ‘건축학개론’ 기억의 공간이라는 책으로 영화와 건축의 이채로운 만남이 불러온 시너지 효과를 만나는 기회를 갖는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건축의 공통분모는 많을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 승민과 서연이 헤어지고 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 집을 짓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묻힌 기억과 현재의 감정이 담겨지는 영화는 ‘서연의 집’이라는 공간에 그대로 담긴다. 작은 오해로 인해 큰 강을 건넜던 두 사람은 새로 짓는 집이라는 공간 속에 자신들의 기억을 서로 몰래 새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건축학개론’의 ‘서연의 집’은 감독과 건축가의 오래된 인연으로 시작된다. 같은 대학 건축과를 함께 다니고 이웃에 살며 소주잔을 나눈 묵은 세월이 영화 속 ‘서연의 집’이라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를 매개로 저자 건축가 구승회는 영화 속 ‘서연의 집’에 얽힌 이야기와 더불어 건축가로 살아오며 느낀 자신의 건축에 대한 생각인 기억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정릉과 창신동 골목길, 누하동 한옥집, 수유동 시장 골목, 개포동 아파트 옥상 위의 하늘 등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간은 두 주인공 승민과 서연의 기억을 함유한다. 이런 공간들을 통해 저자는 우리를 둘러싼 일상의 공간들이 가지는 의미들을 말한다.

 

이 책은‘건축학개론’의 ‘서연의 집’을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점은 3부의 ‘공간은 무엇, 공간을 더 깊이 이해하는 법’에 담겨있어 보인다. 기억이 숨쉬며 살아있는 곳은 생각속의 상상의 그 무엇만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기억은 무주공산 속에서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공간과 함께하기에 지금 내가 존재하는 그곳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기억 속에 담겨 있는 추억이라는 것도 공간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다. 계단이 왜 위로의 공간이 되는지, 대문 밖 펼쳐지는 또 다른 세계에 어떻게 발 디딜 것인지, 지루하고 강요된 공간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 등 저자는 이런 공간의 순기능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알게 한다. 또한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온 건축가들과의 인터뷰에서 건축가도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기억을 쌓아가는 곳이 있다. 전원생활을 동경하다 지난해에 시골집을 마련하며 마당 한 쪽에 조그마한 서재를 지었다. 단열과 난방만 그럭저럭 해결하고 책과 책상을 배치하여 이제는 안정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좋아하는 책을 보고 악기를 연주하며 때론 아무런 생각 없이 창밖 풍경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살아가는 동안 이곳에 쌓일 시간의 흔적이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이런 감정이 건축가인 저자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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