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작은 마을 - 어느 날 문득 숨고 싶을 때
조현숙 지음 / 비타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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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독이는 쉼의 여행

무엇이든 다 특유의 표정이 있다. 보통의 경우 생명이 있는 동물들에게서 표정을 읽지만 보다 주목하는 것은 사람들의 표정일 것이다. 친한 사람이든 처음만나는 사람이든 말 보다는 그 사람의 표정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어쩜 사람 사귐의 일반적인 경향성이 아닌가 싶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표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만남의 성격과 내용이 결정되는 때가 많다. 그렇지만 이러한 표정은 사람에게서만 중요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출퇴근길 날마다 만나는 길거리의 표정, 자동차, 사무실, 길거리 가로수를 비롯하여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내가 사는 곳의 표정도 있다. 이런 표정은 고정불변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수시로 변하며 상호작용을 통해 사람의 일상에 영향을 주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에 이렇게 영향을 주는 도시의 표정에 그리 민감하지 못하다. 늘 익숙한 풍경에 젖어든 까닭이리라. 이런 도시의 표정은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것과 처음 방문한 사람이 느끼는 것이 다를 수도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느끼는 색다른 감정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요즘은 여행의 트렌드가 많이 달라졌다. 관광이나 유흥이 주된 여행에서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휴식과 은둔’의 시 공간을 찾아 가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기에 머물며 느끼고 공감하며 소통하는 것이 어쩜 여행의 본래 취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그런 여행의 트렌드에 맞는 여행에세이를 만나는 것은 이런 저런 이유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 될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숨고 싶을 때’라는 부제를 단 조현숙의 ‘아시아의 작은 마을’은 바로 그런 여행에세이다. 삶에 지쳤거나 버거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나 사랑의 배신에 어쩌지 못하는 자신을 달래기 위해 쉼이나 숨고 싶은 욕망이 일어날 때 그런 여행자를 안아줄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바로 그곳을 소개하고 있다. 무엇이든 할까 말까를 망설일 때는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정답이라고 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떠날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이라면 떠나라고 한다. 이것은 어쩜 미래에 저당 잡혀 오늘을 허비하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삶의 메시지가 아닌가도 싶다.

 

‘아시아의 작은 마을’은 저자가 지난 10년간 아시아 전 지역을 여행하며 그곳이 주는 온기와 정취에 위안 받아온 곳들 중에 가장 마음이 오래 머물렀던 곳들을 골라 이 책에 담았다고 한다. 어딘가로 숨고 싶을 때 그곳에 숨어 자신을 위로하고 다시 살아갈 내일을 향해 발걸음을 내닫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을 누리라는 것이다.

 

이 여행에세이에는 변화무쌍한 현대사회와는 동떨어진 곳들이다. 루앙프라방, 씨판돈, 바간, 만달레이, 인레, 말라카, 빠이, 꼬묵, 우붓, 무이네, 티베트, 타이둥, 포카라 등 현대 문명과는 다소 거리를 둔 아시아의 10개국 19곳의 마을들은 머물러 있기에 좋을 정도로 시간이 멈춘 곳들이다. 시간이 멈췄다는 것은 시간의 노예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어쩜 어색한 공간이며 머물기에 부족함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쉼의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나 그런 경험을 하고 싶은 예비여행자들이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서성일 때 바로 이곳이야 라고 알려주고 있다.

 

여행은 편안한 쉼이나 여유를 만끽한 시간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때론 커다란 충격 속에서 느낀 감정이 오랫동안 머물기도 한다. 저자가 티베트에서 경험한 천장의 모습은 그 어느 여행에세이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을 담고 있다. 숨조차 쉴 수 없는 먹먹한 가슴을 안고 쉼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했던 그 경험은 저자에게 자신 내부로 향한 깊은 성찰을 불러왔을 것이다. 이처럼 여행에 대한 기억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특별한 경험 때문에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저자는 시간이 멈춘 이곳들에서 안정과 평안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것은 현대문명과 거리를 둔 마을이 주는 느낌이라 생각했는데 머무는 여행을 통해 사람들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표정이 그 주된 이유라는 것을 알고 한 층 더 가까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처럼 여행의 의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는 것과 더불어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마을의 표정에서도 발견하는 것이다.

 

이 책은 삶에 지쳤거나 버거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말없이 곁에 머물러 주는 친구처럼 든든한 삶의 동반자라고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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