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 - 이제하 판타스틱 미니픽션집
이제하 지음 / 달봄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이제하, 그는 어떤 사람일까?

소설가, 시인, 음악가, 화가 등으로 세간에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도 활동하는 각 분야에서 독특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온 사람이라면 그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처음 접하는 작가에 대한 낯선 느낌을 조금이라도 좁혀보려는 마음으로 책 ‘코 :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과 함께 있는 이제하 노래모음 CD를 들었다. 목소리에 묻어나는 깊은 어둠, 슬픔 등 호소력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노랫말 역시 심상치 않다. 일주일을 반복해서 듣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 ‘코’는 한국 문단에서 50년 이상 꾸준한 활동을 펼친 이제하의 단편소설집이다. 새로운 소설들과 작가의 대표작들을 다듬어 수록한 것으로 한마디로 쉽지 않다. 그렇기에 어느 단편들 하나하나가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극히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긴 호흡이 필요한 작품들이다.

 

순전히 코 하나만의 매력 때문에 결혼하고 또 그 코 때문에 이혼한 사람들에 집중하다 보면 코를 성형해 준 의사, 우둔하기 마련인 곰에게 마음을 전해 우체국에 보내기도 하고, 각방 선언을 당한 아내의 마지막 말에 헛웃음이 터지기도 하고,10년 전 죽은 아내와 호텔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도 하고, 하늘을 잘라내 이불로 삼았다는 부부 이야기, 미래도시 신시에 도착해 과거 여자를 만나 총살하고 깊은 산골에서 쓰러져 있는 남자 등 서른아홉 가지의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모든 작품은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겠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동안 작가만의 특별한 맛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쉽게 읽히지 않음만큼 놀라운 반전이 미소 짓게 하기에 다른 작품으로 눈을 돌릴 힘을 주고 있다. 현실의 삶과는 다소 동떨어진 세계를 무대로 독자들을 초대하고 있는 작가의 상상력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판타스틱이라는 말이 주는 상상력의 세상은 때론 분홍빛의 환상을 넘어 우울함이나 암담함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제하의 작품 속에서 느끼는 황당함이 때론 현실에서는 이뤄갈 수 없는 꿈이 환상 속에서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문학이 가진 속성 중 하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솔직한 성찰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제하의 작품에 담긴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어쩜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본성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소설은 서른아홉 명의 이제하 뿐 아니라 지금 내 모습도 이 안에 담겨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