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 해례본 - 드라마의 끝, 역사의 시작
이경민 지음 / 소네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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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나라 조선을 보는 눈

조선 500년의 역사에는 수많은 왕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 주목받고 있는 왕은 그리 많지 않다. 조선을 세운 태조로부터 격변기를 안정적으로 구축한 태종과 그 뒤를 이어 문화의 정치를 펼친 세종 그리고 아우를 내 몰고 왕권을 잡은 세조까지 조선 초기의 왕들은 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이유로 그들의 조선을 만들어 왔다. 시간이 훌쩍 지나고 현대에 와서 그들의 정치를 살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와도 상통한다.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도 이어지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근거를 찾아 내일에 대한 희망의 끈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꽃을 피우며 수많은 사람들을 화면에 집중하게 만들었던 ‘뿌리 깊은 나무’는 역사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을 만큼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우리가 알고 있던 왕 세종의 이미지를 상상 속에서 현실로 이어지게 만들었던 배우의 연기도 왕권과 신권의 갈등을 묘사하는 장면도 한글이라는 문자의 창제를 둘러싼 의혹도 이 드라마를 흥미롭게 이끌어가는 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이 드라마가 남긴 이기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역사와 현실을 이어주는 맥락을 말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의 근본을 묻기 이전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누구를위한 정치를 펼쳐야 하는지에 대해 현재의 당면한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역사 속에서 그 뿌리를 찾아 보여주었다는 점이 가장 돋보이는 것이다.

 

이 책은 그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중심적인 이야기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아버지 태종과 아들 세종의 갈등, 한글 창제에 얽힌 비밀, 밀본으로 대표되는 왕과 신권의 권력투쟁, 세종의 다양한 면모와 그의 시대에 주목받은 사람들, 세종의 나라 이후 만들어진 조선의 또 다른 모습 등을 기존의 역사적 해석과는 조금은 다른 시각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다. 저자 이경민의 다른 시각은 역사를 재해석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조선 초기 국가의 기틀을 만들고 이를 정착시켜야 했던 절박한 시대를 어떻게 왕들이 헤쳐 왔는지에 대한 시각과는 별도로 현대사회에서 유용하게 바라보고 있는 시각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기존의 해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종의 조선으로 표현되는 그 시대를 “모두의 진심을 얻어 그들을 품는 조선”을 지향했다고 전재하고 있다. 이를 세종이 어떻게 풀어갔는지를 자세하게 검토하며 전 후 왕들과 비교하여 세종의 업적을 밝힌다. 그 속에서 주목되는 점은 아바지 태종의 무력을 주임에 둔 왕권의 강화로 안정된 기틀을 이어받아 태종과는 다른 조선을 이끌어 갔다는 점,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토론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뤄갔다는 점 그리고 세종의 가장 큰 업적으로 남아 있는 한글 창제가 갖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혀가고 있다.

 

특이할만한 점은 한글 창제의 목적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다. 익히 많은 사람들이 지금가지 알고 있었던 점에서 한 걸음 나아가 새로운 시각에 주목한다. 그것은 덩시 한자문화권에서 한자의 습득을 통한 학문의 길이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각기 다른 한자음에 대한 표기를 통일화시켜 한자공부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점이 그것이다.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고 그 외 다른 점을 찾아보지 못했던 상황에서 저자의 해석은 신선하다. 물론, 저자의 해석이 옭고 그르다는 판단의 근거가 역사학계에서 어떻게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당시 상황을 살필 수 있다는 점은 주목된다.

 

‘그들은 결국 그들의 지혜로 길을 모색해 갈 것이다. 그리고 매번 싸우고 또 싸워 나갈 것이다. 어떤 땐 이기고, 어떤 땐 속기도 하고, 지기도 하겠지. 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역사니까. 지더라도 괜찮다. 수많은 왕조와 지배자가 명멸했으나, 이 백성은 수만 년 동안 변치 않고 이 땅에 살아 있으니까. 또 싸우면 되니까.’

 

드라마의 한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밀본의 수장 정기준이 죽어가며 세종과 나눈 대화 중에서 세종이 한 말이다. 이 말처럼 역사에서 백성의 존재를 대변하는 말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핵심을 담고 있다고 보인다. 역사가 지속되는 한 백성의 삶은 계속 이어갈 것이기에 말이다.

 

조선의 뿌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저자는 세 가지 뿌리를 이야기 한다. 왕조국가인 조선에서 권력의 중심인 왕과 그 왕이 올바른 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하는 신하 그리고 백성들을 꼽고 있다. 역사는 이 세 뿌리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제 자리를 잡지 못할 경우 나를 이룬 기틀이 무녀지고 결국 멸망의 길에 들어섰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충분한 의미를 가지는 말로 다가온다. 정치형태는 시대를 달리하며 변해왔지만 그 중심을 구성하는 뿌리는 여전하다. 뿌리들 중에서 핵심이 되는 백성에 대한 시각 또한 마찬가지다. 이것이 단지 대의적인 명분으로만 그칠 때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는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세종과 세종이 살던 시대를 꼼꼼하게 짚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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