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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오직 홀로 설 수 있으면
매화가 반가운 시간이 지나고 벚꽃이 화사함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봄을 대표하는 말로 생명력을 이야기 한다. 그 생명력의 원천은 동토의 시간을 인내하여 만물의 소생을 불러오는 힘을 바탕에 두고 있다. 매서운 바람과 차가운 기온이 엄습하는 시간동안 만물은 새로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나무에서 새로운 잎이 나고 꽃을 피우는 힘이 바로 봄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 뒤엔 오랜 기다림의 시간 겨울이 있었다는 점을 우린 쉽게 잊고 만다. 봄을 기억하지만 그 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겨울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처럼 봄날의 찬란함은 겨울 같은 시간을 보냈기에 가능했던 일은 무수히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 만나는 책 ‘시골무사 이성계’ 역시 한 나라를 개국하고 태조로 등극하여 보낸 시간에 주목한 것이 아니다. 봄의 찬란함이 왕으로 대치할 수 있다면 그 왕이 되기 전 어쩜 초라했을 한 무장의 시절이 겨울동안에 주목하고 있는 책이다. 고려 우왕 6년 때인 1380년 9월 남원의 지리산 자락에서 있었던 황산 전투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여 나이 들고 초라한 무장인 이성계에 주목한다.
황산전투는 객관적 사실로만 보자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고려 정부의 지원도 없고 병력의 숫자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신들보다 10배나 많은 적을 상대로 한 싸움이다. 더구나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상관과의 갈등은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몰고 가기 까지 한다. 하지만 이성계는 단 하루 만에 커다란 승리를 이뤄낸다. 겨울같이 얼어붙고 죽음처럼 막연한 시간동안 봄을 준비하는 이성계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지리산 자락 운봉현 인월의 황산전투에는 정치적 힘의 역학관계가 충동하고 있다. 우선은 왜구와 고려군의 목숨을 건 싸움이다. 왜장 아지발도는 일본 내 무너져가는 남군을 살리고자 가족도 죽이고 나선 길이었다. 이에 맞서는 고려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무너져 가는 원나라와 새롭게 등장하는 신애 명나라 사이에서 고려 정부는 무력하기만 하다. 저마다 그럴듯한 이유로 친원파나 친명파니 하면서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몰두한다. 황산전투에서도 마찬가지다. 체찰사 변안열과 정몽주 그리고 이성계와 정도전이 각 한 축씩을 맞아 당시 고려의 정치적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하여, “지면 죽음으로 답해야 하고, 이기면 그것으로 그만인 싸움”에서 이성계는 머뭇거리는 모습이다.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싸움에서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지만 하늘아래 홀로설 수 있을 때 이길 수 있다는 정도전의 말은 화두로 남아 칼과 화살 사이에 선 자신과 생사를 넘나들고 있다.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소설은 고려 말 새롭게 등장한 신흥세력이 꿈꾸는 변혁의 꿈을 살그머니 이성계와 정도전의 이야기 속에 풀어 놓는다. 이미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개국한 두 주인공의 역사적 사실이 배경으로 깔려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시골무사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려고 했는지 노쇠한 무장 이성계는 보다는 정도전의 지략이 돋보이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운과 개인의 운명을 건 단 하루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이성계의 힘은 무게를 더해 간다. 무장력을 갖춘 조정의 실세로 등장하여 훗날 혁명의 성공에 이르는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변혁을 준비하는 그 시작이 황산전투였다면 어쩜 ‘국운과 개인의 운명을 건 단 하루의 전투’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 된다. 전투장면의 생생함 보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대화에서 진정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