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홍신 세계문학 7
존 스타인벡 지음, 맹후빈 옮김 / 홍신문화사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기댈 것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뿐이다

인류의 기억 속에 남은 위대한 문학 작품들이 수없이 많다. 문학 작품이 위대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형태가 어떻든 모든 문학 작품은 인간의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전재로 한다면 그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바탕에 녹아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전재를 어떻게 담아내는가에 따라 문학 작품의 의의가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서 작가의 가치관이 주목받는다.

 

‘나는 내가 내 나라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 관해서 글을 쓰는 미국 작가이지만 나는 실은 기억에만 의존해왔다. 그런데 기억이란 기껏해야 결점과 왜곡 투성이의 밑천일 뿐이다. 참된 미국의 언어를 듣지 못하고 미국의 풀과 나무와 시궁창이 풍기는 진짜 냄새를 모르고, 그 산과 물, 또 일광의 빛깔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알지도 못하는 것을 써왔던 셈이다. 이른바 작가라면 이것은 범죄에 해당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내 눈으로 과연 이 거대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다시 발견해보리라 마음먹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로 이야기 되는 J.E. 스타인벡(1902. 2. 27 - 1968. 12. 20)의 위의 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모든 문학은 그 형태가 어떤 모습이든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을 반영하게 되지만 이를 어떻게 작품 속에 구현하는가는 작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점에서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이 갈라지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단편적인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초반 미국 실생활을 구체적으로 반영한 작품이다. 대공황으로 인해 실업자 수가 폭증하고 삶의 터전에서 강제적으로 쫓겨나는 이주민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렵지만 가족을 구성하고 그 가족이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기반이 되는 사회에서 산업의 변화와 이에 따라 해체되는 가족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술기운에 자신을 보호하려다 살인죄를 저지르고 복역 중 가석방으로 풀려나 톰 조드는 집으로 돌아온다. 먼지 날리는 길을 걷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세례를 해주었던 전도사를 만나 옛집으로 찾아가지만 그 집은 이미 텅 비어버린 생태다. 이미 가뭄에 의해 말라버린 농작물 같은 신세가 된 사람들은 은행의 거대자본에 의해 농토마저 잃게 된다. 고향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기에 온갖 소문이 난무하는 곳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에 오른다. 고물 트럭에 세간을 싣고 험난한 여정에 오른 사람들은 조드의 가족만이 아님을 금방 알게 되지만 멈출 수 없는 기차처럼 가고 또 갈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에 근접할수록 꿈꾸던 이상향이 아님을 알게 되지만 그들은 멈추지 못한다. 이미 돌아갈 고향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온 사람들은 굶주리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무슨 일이든 찾고자 하지만 이미 일자리는 없다. 그나마 남은 일자리마저 자본가들의 횡포로 터무니없이 싼 임금을 강요받게 된다. 이제 정착할 수 있는 땅이 없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목숨을 담보로 나선 길 위에서 떠도는 것 말고는 없어 보인다.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은 가족의 해체를 강요받는 길이었다. 오랜 여행에 지치거나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도망자 신분이 된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서 그나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그런 의미에서 주목받는 작품이다. 있는 그대로의 미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겪게 되는 좌절과 우울, 소외, 죽음과 같은 부정적 요소보다는 배려와 나눔, 따뜻한 인간애 등에 주목하여 인간성 회복의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긴 호흡이 필요한 이 작품은 조드라는 가족이 닥친 현실을 뚫고 가는 모습을 그려가는 것과는 별도로 객관적 상황을 묘사하는 중층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다. 한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강요했던 당시 시대적 상황을 함께 묘사하고 있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미국의 현실을 보다 강하게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임신한 아내를 버리고 떠난 남편에 대한 절망감과 굶주림 등으로 사산을 한 로저샨은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불어난 젖을 먹이는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잃지 않고 견지한 ‘인간의 존엄성’과 ‘희망’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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