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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기아스 ㅣ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1
플라톤 지음, 김인곤 옮김 / 이제이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정치연설의 근본에는 사람의 행복한 삶이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삶에 대해 규정하려는 노력은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보인다. 기원전부터 시작된 이러한 노력이 돋보이는 시대는 동양과 서양에서 저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동양에서는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그 빛을 발했으며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에서 보여주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철학이라고 하면 먼저 생각되는 것이 서양철학으로 그 뿌리를 그리스 시대에 있었던 철학자들로부터 이야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이어지는 철학의 계보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스 시대 무엇이 이러한 철학의 발달을 매개했을까? 모든 학문과 사상은 당시를 살았던 시대의 흐름과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 당연히 모든 학문의 시작이라고 하는 철학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리스라고 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시민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아테네의 도심과 각종 아카데미에서 벌어졌던 토론이 그 기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성과가 기록으로 남아 옛 사람들의 사상적 탐구과정을 알 수 있으며 그 맥이 오늘날 철학의 기초가 된다.
‘고르기아스(Gorgias)’는 플라톤의 저작으로 소크라테스와 고르기아스, 카이레폰, 폴로스, 칼리클레스 사이에 벌어졌던 대화가 주된 형식이다. 그리스에서 정치가는 연설가로도 활동을 했다. 이는 당시 정치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요구를 실현하고 권력에 대한 욕구를 얻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시민을 설득할 수 있는 연설가로써 성공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대화’ 기술이 어떤 의미와 역할을 하는 것인가에 대해 주목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철학과 정치가 연설술과 어떻게 관계 맺어 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고르기아스는 연설회장의 바깥장면을 묘사하는 도입부를 시작으로 소크라테스와 고르기아스의 대화, 소크라테스와 폴로스의 대화, 소크라테스와 칼리클레스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소크라테스가 대화 상대자들을 하나씩 설득하여 진리에 대해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에는 시민을 설득시키는 것의 근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에 대해 주목하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면 그것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가?’ 에 대한 접근 방식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주제를 이끌어가는 사람으로 소크라테스가 있으며 이와 대화를 통해 당시 대표적인 연설가들의 근본적 사상에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연설술이 단순히 시민을 설득하는 것에 그친다면 설득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밝혀가며 정치가의 사상을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연설을 통해 시민을 설득하는 목적이 기술로서 연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관습이나 법률과 자연도덕의 관계 역시 살피며 개인들이 갖는 힘과 권력이 근본적으로 무엇을 이롭게 해 가는 과정이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밝히는 것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플라톤이 어떤 지위를 갖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동양에서 공자가 주유천하하며 자신의 사상의 핵심인 ‘인’을 현실정치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했던 것과 비교하여 살펴도 흥미로운 것이 아닐까 싶다. 철학이든 사상이든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유리된 것이라면 그러한 학문은 결국 인간의 삶에 대한 지혜를 밝히지 못할 것이다. 플라톤이나 공자와 같은 철학과 사상이 2000년이 훌쩍 넘는 지난 시대의 이야기지만 오늘날에도 가치가 줄어들지 않은 이유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역시 대중을 설득하는 방법으로 연설은 유용하다. 다만, 그 방식과 전달하는 매체가 달라진 것 말고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본다. 오늘날 우리 시대 정치가들이 보여주는 텔레비전 토론회는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이끌어가거나 상대방을 설득하는 모습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 이유가 기술의 부족이 아닌 설득하고자 하는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그 무엇이 빠진 설득은 의미가 없으며 대중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