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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 - 역사와 해학의 글씨를 만나다
김남인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1월
평점 :
그림 감상하듯 글씨와 만나다
손 글씨가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의 개성을 살려주고 나름의 멋을 한껏 살려주는 것이 손 글씨다. 컴퓨터가 일상화 되고 E-mail이나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와 같은 수단이 발달하면서 편지도 사라졌다. 필기도구를 가지고 손으로 글씨를 쓸 수 있는 환경이 변했다는 것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정을 이어주는 수단이 없어지는 것 같아 못내 아쉬움이 있다.
필적은 사람의 DNA처럼 특수한 성격을 나타낸다고 하는 점을 주목하면서 발간되었던 책이 있다. 강력범죄 전문 검사가 친필 분석을 통해 항일 운동가들의 삶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아 놓은 책이 ‘필적은 말한다’(중앙books(중앙북스), 2009)라는 책이다. 십여 년 넘게 전국의 고서점과 미술상을 돌아다니면서 수집한 글씨를 바탕으로 글씨가 곧 사람이라고 하는 것에 주목한다. 필적은 말한다의 저자 구본진은 ‘사람의 성정과 기질이 글씨에 반영되어 있어서, 글씨를 들여다보면 마치 관상을 보듯이 그 사람을 훤히 꿰뚫어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글씨에 주목하는 또 한권의 책을 만난다. 역사와 해학의 글씨를 만나다라는 부제를 단 ‘명필’이 그 책이다. 이 책 저자 역시 전국을 발품 팔아 돌아다녔다. 사찰과 서원, 정자 등 현판과 편액, 주련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한학을 배웠다고 한다. 일단, 한자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이 글씨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점은 현대인이 한자를 바탕으로 된 글씨에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에 반해 장점이라는 것이다.
한자를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저자는 글씨를 보는 방법에 대해 친절한 안내를 하고 있다. 글씨를 그림처럼 보라고 한다. 한자를 모르면 글씨와 만남에 두려움을 느끼고 친근함이 떨어져 글씨가 주는 맛과 멋을 알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현실을 감안한 방법이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듯 자신만의 눈으로 스스로 느껴보는 것이 글씨와 친해지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리 문화재는 불교와 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 글씨를 이야기 할 때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사찰 건물의 현판과 편액, 주련 등에 남아있는 글씨들을 찾아가는 이유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글씨에는 역사와 종교가 공존한다. 삼각산 화계사에서 금정산 범어사까지 사찰을 찾아다니는 저자의 발걸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대 명필들의 삶과 정치적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부침을 거듭했던 상황을 함께 살펴야 글씨에 담긴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불교라는 종교의 교리를 담고 있는 사찰의 경내를 둘러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주문부터 시작하여 대웅전과 산신당까지 건물배치와 각 건물의 의미를 알았을 때 전각의 편액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의 발걸음은 사찰에 머물지 않는다. 이이나 이황, 송시열, 최치원의 흔적이 있는 정자들을 찾고 화양계곡의 돌에 새겨진 글씨를 찾아 나선다.
글씨는 개인의 특성을 나타내지만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한다. 서체는 그림처럼 유행이 있어 흐름이 있고 당대의 정치와 경제, 생활상이 담겨 있다. 글씨 한 점에 주목하고 그 속에 깃든 예술성과 역사성을 함께 경험한다. 저자는 명필 속에 숨어 있는 역사와 풍류, 해학, 문화, 예술의 세계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역사전공자가 아니라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적 쟁점이 논란 없이 받아드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이의 십만 양병설을 기존 학설에 의거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이다. 우암 송시열의 영향으로 당시의 사료에는 없는 이이의 양병설이 사실화 되고 무게가 실렸다고 보는 시각은 무시된다.
저자는 글씨는 세 번 태어난다고 한다. 붓으로 쓴 글씨와 나무판이나 돌에 새긴 글씨 그리고 이것을 볼 때 감상자가 보는 글씨다. 한자가 일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감상자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글씨가 갖는 매력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저자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이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