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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 득음에 바치는 일생 ㅣ 키워드 한국문화 9
최동현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9월
평점 :
살아남아야 전통을 계승할 수 있을 것이다
한해 농사를 시작하기 전 마을 사람들이 회관에 모여 한바탕 잔치를 연다.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부녀회원들은 먹을거리를 장만하고 스피커에서는 요란스런 음악이 마을을 흔들고 있다. 뽕짝이라고 하는 흥겨운 노래에 저절로 어께 춤을 추는 어른들이 하나 둘 늘어나며 행락 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민요나 판소리 같은 우리 가락으로 놀이마당을 펼치는 것은 쉽게 볼 수없는 풍경이 되고 말았다. 마을 어른 분들의 경로잔치를 겸한 놀이마당에 우리 가락을 선보이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나선 사람들의 마음이 한편으로 무겁다. 그 자원봉사자들이 준비한 것이 우리 가락인 민요나 판소리 대금 연주 등이기에 이런 자리에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농촌이나 대도시 할 것 없이 흥겨움을 나타내는 자리에 주인공들은 전통가요라고 하는 트로트가 전부인양 보여 진다. 모두가 동일한 알 수 없는 몸짓에 번지는 미소 또한 낫설어 하며 우리 전통이 이제 다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한복을 차려입고 무대에 오른 사람들이 준비해온 노래를 시작하자 마을 어른들의 흥겨움은 애상과는 달리 매우 빠르게 하나가 되는 모습이다. 공연 전 멋쩍었던 마음은 금방 사라지고 하나가되어 즐기는 모습에 수천 년 내려온 우리 정서 속에 살아있는 우리만의 풍류를 찾은 듯하여 우려가 말끔히 사라지며 흥겨움이 배가된다.
현실은 이렇게 우리 문화의 한 축이었던 우리 음악이나 우리 가락이 사라져 버린 듯 한 모습이지만 아직 가슴속에는 잊혀진 것처럼 생각되는 전통의 맥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경험이 아닌가 한다. 우리 문화에는 소리라고 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다. 순전히 사람 목소리에 의존하여 사람들의 삶을 노래한 판소리는 판소리가 가지는 가치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판소리의 주인공인 소리꾼 역시 같은 처지에 놓인 듯하여 안타까움이 크다.
이 책 ‘소리꾼’은 우리의 소중한 전승예술인 판소리와 소리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양문화가 이미 우리 것으로 자리잡아가는 현대에 전통의 계승이라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판소리와 소리꾼에 대해 현실적인 어려움을 넘어선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판소리는 1964년부터 국가의 정책적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사라질 위험에 처한 현실에서 불가피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이미 보호를 받아야할 만큼 절박한 실정이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절박성에 이르게 했을까? 문화는 혼자누리는 것이 아닌 공동체의 선택에 의해 공유되고 향유되어야 하는 것이다. 판소리가 그런 기능을 상실했기에 법적인 보호를 받아야할 만큼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현실에서도 전통의 계승이라는 힘겨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또 판소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 판소리를 배우고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도 현실이기에 판소리의 운명이 그리 암담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보고 싶다.
이 책은 판소리의 소리꾼이 주인공이다. 소리꾼이 좋은 소리를 얻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지난 명창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들려주고 있다. 바로 득음 과정이 그것이다. 득음이란 ‘소리를 얻는다’는 뜻이다. 본래 소리꾼이 가지지 못한 ‘소리’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얻어야 할 소리의 기준이 있다. 오랜 시간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괜찮도록 성대를 만들고 이를 통해 자유자재로 사람의 목소리에 의존한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소리꾼의 일생을 통해 판소리의 정수를 보여주고, 전승예술로서의 판소리가 지닌 특징을 보여준다.
전라북도 고창에 가면 판소리 박물관이 있다. 신재효가 판소리에 쏟은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 후대에 전해지는 곳이다. 신재효하면 동시에 연상되는 사람이 진채선이다. 진채선은 또 흥성대원군과 연결되어 조선말 판소리의 흐름을 쫓아가게 한다. 이 책은 그동안 유명한 명창으로 거론 되어진 사람들이 등장하며 우리 소리의 맥을 찾아가는데 중요한 흐름을 알려주고 있다.그 흐름뿐 아니라 각 명창들의 특징과 그들에 얽힌 일화들을 통해 우리 기억 속에도 아직 생생하게 살아있는 박동진 명창에 이른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명창 중에 그 소리가 현대에까지 전승되어 오는 경우도 있지만 당대에서 맥이 끊긴 경우도 있다. 이는 명창의 소리를 이를 제자가 없었거나 그 소리가 시대의 변화에 따른 대중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이유도 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특출한 사람이 박동진 명창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소리꾼들이 염두에 두어야할 이야기일 것이다. 박동진의 판소리는 위기에 처해 있던 판소리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것으로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그것이 판소리의 대가 박동진이 보여준 가장 큰 의미라고 보고 있다. 대중과 호흡하지 못하는 문화는 사라진다.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고 계승해야 하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람들과 호흡하는 것 역시 주목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국악의 변화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퓨전국악이라는 현대음악과 전통음악을 이어가며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가는 젊은 국악인들이 대중으로부터 호응을 받는 것 역시 이런 것의 일환일 것이다. 이 책 소리꾼을 통해 전통문화가 미래에도 여전히 우리 문화로 굳건하게 자리 잡을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