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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긴 편지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70
마리아마 바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변화 속에서 찾아야 하는 정체성
급격한 사회적 변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을 뒤흔들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생각에 혼란을 거듭하게 만드는 일로는 전통적 가치관과 변화된 사고 사이에서 오는 갈등이 클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 역시 이러한 전통적 가치관과 달라진 상황 속에서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전쟁과 가난을 몸으로 경험해온 할아버지 세대와 그런 상황을 눈으로 보면서 자라며 현대적 교육의 영향 속에서 자란 아버지 세대 그리고 이들과는 판이한 환경 속에서 자란 청소년들 사이에는 분명하게 달라진 생각이 존재한다.
달라진 환경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다음 세대들의 몫으로 남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무시하지 못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은 아직 강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 혼란스런 생각의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현 시대는 하여, 각 세대마다 저들만의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경험하고 믿는 바대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볼 때 좁혀지지 않은 생각의 차이를 무엇으로 극복해야 할까?
우리도 경험한 것처럼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오랜 식민지 지배를 경험한 3세계 국가들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이토록 긴 편지’는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세네갈이 해방 후 격변하는 사회에서 전통적 가치와의 충돌의 최전방에 서 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남편의 죽음을 맞이하고 40일간의 복상 기간을 보내는 동안 50대 여성 라마툴라이가 친구 아이사투에게 쓴 편지 형식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이후 성장과정을 함께 보냈으며 비슷한 삶의 여정을 보낸 친구에게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삶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형식이지만 그 이야기 중심에는 이슬람의 율법에 의해 인정된 일부다처제를 둘러싼 두 여인의 고통과 선택, 새로운 삶에서의 번민 등이 담겼다.
친구 사이인 라마툴라이와 아이사투는 일부다처제의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선택은 달랐다. 아이사투는 바로 이혼하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삶을 택하지만 라마툴라이는 일부다처제의 현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나서 남편이 죽자 다시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아이사투처럼 자신의 삶에 주인공으로 나선다. 이 사이 아프리카 여성들이 겪는 이야기의 핵심이 들어 있다. 전통적 가치관에 의해 숙명처럼 여성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1세대 해방과 더불어 새로운 교육을 접하며 자신의 삶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2세대 그리고 보다 자유로운 이들의 자녀들인 3세대 사이에 나타나는 세대 간의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녀들은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지는 듯 보이지만, 거듭되는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여성의 사랑과 결혼, 육아, 결혼제도, 이슬람식 장례의 풍경, 재산 상속 등 다소 낫선 모습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 속에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특수성도 보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안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 중첩된다. 전통과 근대화의 사이에서 생겨나는 가치관의 혼란과 남녀 성차별, 세대 간의 갈등, 교육 문제 등 우리도 익히 경험한 일이며 지금도 변하지 않고 우리의 사고 속에 꿈틀대고 있는 혼란스러운 것들이다.
시대가 바뀌면 그에 따라 당연히 사람들의 의식도 변하기 마련이다. 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변해가는 과정에서 오는 혼란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가가 문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