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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도서관 -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의 모든 마음이 담긴 도서관의 모든 것
오랜 꿈이 이뤄지는 중이다. 도시의 콘크리트 벽을 탈출하여 넉넉함이 있는 시골생활을 꿈꿔 온지 오래되었는데 지금 시골집을 장만하고 수리중이다. 집을 수리하며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나만의 서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지대가 낮은 평지 마을이라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멀리에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마루에 앉아 볼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오래된 한옥의 본체를 살기에 불편함만 줄이는 선에서 수리하고 마당 한 쪽에 서재 공간을 만들었다.
기존 담장을 이용하여 바닥을 고르고 기중을 세워 판넬로 지붕과 남은 벽을 마무리 하고 한쪽은 유리로 마감을 하니 제법 넓은 공간이 생겼다. 10여 평이 조금 넘은 이 공간을 이제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마음부터 설렌다. 아파트 거실 양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그러고도 남아 이 방 저 방에 쌓여 있는 책으로 채워가는 멋진 공감연출이 기대된다. 판자로 책장을 만들어 벽에 붙이고 5000여 권의 책을 분류해서 하나 둘 채워 가면 그 공간은 앞으로 살아갈 집의 생활중심이 될 것이다. 비록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지만 서재의 이름도 붙여주고 마음 나눌 벗들이라도 가끔 찾아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책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속 자신만의 공간을 꿈꾼다. 그곳은 이름이 어떻게 불리든 공간의 크고 작음도 상관없이 책과 더불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소망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놓은 책이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은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이라는 설명과 함께 저자가 자신의 도서관을 만들어가면서 도서관의 역사를 비롯하여 도서관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도서관의 기원에 대해 추적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신화, 정리, 공간, 힘, 그림자, 형상, 우련, 일터, 정신, 섬, 생존, 망각, 상상, 정체성, 집 이 모든 것은 저자가 도서관과 관련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다. 이러한 축을 바탕으로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도서관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이다. 이미 사라져 버린 책과 도서관, 누구도 찾지 않은 책일지라도 사람의 역사와 그 맥을 함께해 온 것이 도서관이다. 이렇듯 도서관이 갖는 고유한 기능에서부터 역사적 변천과정, 사회적 기능과 역할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아우르고 있다. 아무리 시대적 환경이 변하더라도 도서관이 갖는 그 역할은 그렇게 큰 변화를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오늘날 전자책이라는 편리하고 시간성에 거의 제약을 받지 않는 도구가 발달하면서 출판시장이나 책의 유통 경로에 그리고 도서관이 가지는 근본적인 기능에 구조적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저자의 견해에 주목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용 환경의 편리성이 종이책보다 월등한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장 사이를 거닐거나 책장에 자리 잡은 책의 제목만으로도 여행이 충분하며 묵은 잉크냄새가 베어나는 종이책 중심의 도서관이 주는 향수는 강하게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빼곡히 들어선 책장들 사이로 숨겨진 이야기들은 무엇일까? 세상에는 어떤 도서관들이 존재했고, 어떤 이유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그런 도서관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저자가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인 도서관에 대한 감성적 표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든 과정에서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도서관을 어떻게 꾸미고 이용하며 그 속에서 스스로 얻게 되는 감정상의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소 무거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흐름이 한결 정답게 느껴지도록 한다.
"책이 우리 고통을 덜어주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이 우리를 악에서 보호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을 읽어도 우리는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모를 수 있다. 책이 죽음이라는 공통된 운명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다.(중략) 잘 쓰인 책이라도 이라크나 르완다의 비극을 덜어줄 수 없지만, 엉터리로 쓰인 책이라도 운명적으로 맞는 독자에게는 통찰의 순간을 허락할 수 있다."
“책이 그렇게 좋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변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딱히 설명한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난감할 때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의 이 말 한마디면 해결될 수도 있을 듯싶다. 이것으로도 다 말하지 못한다면 “그냥 읽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그렇겠지만 마음 다해 무엇에 흠뻑 빠져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주는 깊고 무거운 감동을 다 알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 무척이나 덥지만 그 더위를 책과 더불어 이겨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책이 주는 무한 감동의 세계와 그 책이 살아가고 있는 도서관이 가지는 의미를 말이다. 아직 지붕에 벽체만 완성된 서재지만 그 안에 담겨질 세상이 어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서재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