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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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 살아가는 ‘낯선 나’
높은 아파트들과 화려한 상가들 그 사이에 섬처럼 떠있는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사람들의 선망이 되는 지역이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집값을 반영하듯 새로 조성된 그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마치 사람들이 버린 온갖 쓰레기들 속에서 먹이를 찾아 파리 떼들이 몰려들듯 말이다. 그곳에 둥지를 틀고 목에 힘깨나 주는 사람들은 알까? 자신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버렸던 온갖 쓰레기를 매립했던 장소가 그곳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과거를 알 수 없도록 포장된 이미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포장된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이중성을 강요한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나 사이를 구별하는 경계에 서서 양쪽에 한발씩 걸쳐두고서 어느 쪽을 선택하고 자신을 포함시킬지 갈등하며 살아간다. 속하지 않은 세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남이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듯이 이곳이 있으면 반드시 저곳이 있기 마련이다. 이 둘은 도시가 가지는 어쩔 수 없는 양면성이다.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은 내가 속하고 싶어 하지 않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감추고 싶은 도시의 이면이기에 그래서 누구도 속하고 싶지 않은 ‘쓰레기 매립장’인 ‘꽃섬’이 주 무대가 된다. 별 다를 것 없는 산동네에서 살던 딱부리의 엄마는 불쑥 찾아온 남편의 친구 ‘반장’의 제안으로 돈도 더 많이 벌고 잠잘 수 있는 집도 준다는 말에 꽃섬의 구성원이 된다. 세상 모든 곳이 그렇듯 꽃섬에도 그들만의 질서가 있고 사람 살아가는 곳이기에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내가 도시 외곽의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열네 살 딱부리와 얼떨결에 동생이 된 땜통은 쓰레기 속에서 쓸 수 있는 물건들을 찾아내는 어른들이 사는 꽃섬에서 그들과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빈곤과 부, 도심과 외곽, 현실과 가상의 세상, 이 두 세상을 이어주는 사람으로 ‘빼빼엄마’는 그 존재성을 부여받고 있다. 하지만 작가 황석영이 찾고자하는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엔 어설픔이 있어 보인다. 인간이 가지는 욕망이 불러온 파괴와 그 산물의 총체라 할 수 있는 쓰레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성찰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김서방네(정령들)로 이야기되는 정령들의 세상에서 또 다른 희망의 요소를 찾는다는 것은 무리한 것이 아닌가도 싶다.

그렇더라도 작가가 말하는 ‘늘 우리 곁에 있으되 우리가 잊고 사는 그 세계’, ‘그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이 마지막으로 가 닿은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 역시 다가올 세상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무엇인가에 목말라 있으며 어쩌다 한번 씩 찾아가게 되는 도심으로 진출할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 소설의 풍경은 “세계 어느 도시의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다. 그래서 작가의 ‘낯익은 세상’은 외면하고 싶어 하지만 어쩌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날마다 지나치기에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마치 처음 온 길처럼 낯선 느낌을 줄때가 있다. 건물도 나무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모두가 처음 보는 것 같은 이러한 느낌은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많은 시간을 함께해온 공간이지만 나와는 도무지 공감하지 못하는 낯선 세상으로 다가올 때면 세상 사람들 속에 자신의 존재감마저 잃어버리는 느낌이어서 당황스럽기만 하다. ‘낯익은 세상’이 ‘낯선 세상’처럼 보이는 것이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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