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점 홍신 세계문학 2
미우라 아야코 지음, 최호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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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김없는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
인간의 내면에는 얼마나 다양한 감정들이 중첩되어 있을까? 외부의 영향에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게 변하는 마음 상태를 느끼다 보면 내 안에 무엇이 그리 복잡하고 많은 것이 담겨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세상 모든 것을 품고도 남을 넉넉한 마음일 때도 있는가 하면 바늘하나 꽂을 수도 없이 닫힌 마음일 때도 있다. 그 경계를 서성이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혼란스럽다. 그렇게 본다면 완전하게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다 처한 상황에 따라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반응하며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또한, 우리가 선(善)이내 악(惡)이내 하는 것도 알고 보면 시대에 따라 달리 평가하고 또한 사람에 따라 달라져 왔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선이나 악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이를 증명하는 것이 여간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더라도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분명하게 있다. 이렇기에 사람들은 문학이라는 가상현실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나마 마음껏 그려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코 평탄한 삶이 아니었던 일본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은 바로 그러한 인간의 복잡한 속내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慾)을 벗어난 일상생활은 극히 어렵듯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와 그 폭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평범하고 행복해 보이는 단란한 가정에 어느 날 불행이 닥친다. 누구의 책임도 아닐 수 있지만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의 결과는 자못 심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한 도시의 병원장과 그 가족에서 닥친 일로인해 가족 내 중심이 되는 부부사이가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 출발은 세 살짜리 아이의 실종과 죽음이다. 

죽은 아이를 잊지 못하는 부인 나쓰에의 부탁으로 남편 게이조는 나스에의 불륜에 대한 복수로 아이를 죽인 범인의 아이를 입양한다. 그 근저에는 자신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대의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다. 죽은 아이를 대신하는 자리에 들어온 요코는 나쓰에의 헌신적인 사랑에 의해 밝고 명랑하며 착한 아이로 성장한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남편의 숨겨진 이중성이 드러나면서 파행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요코는 조금씩 자신의 처지를 알아가면서도 선천적으로 누굴 미워할 수 없는 성격에 의해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며 성장하지만 어머니 나쓰에의 편집증적인 모습에 자신을 더욱 강한 사람으로 다그친다. 이후 요코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도 좋을 사람’인 기다하라를 만나면서 나쓰에와의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결국, 자신의 존재의 근본적인 원인에 접근하여, 이 모든 상황의 출발점인 자신의 원죄를 느끼고 자살을 결행한다.

빙점이 보여주는 오해와 불신의 축은 남편 게이조, 부인 나쓰에, 부인을 좋아하는 무라이의 삼각관계에서 출발하고 있다. 사랑이라고 하는 현실의 문제가 어떻게 왜곡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서 부인 나쓰에로 그려지는 인간형을 보면 인간의 근본적이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남편을 살아하면서도 자신에게 구애의 눈길을 보내는 다른 남자의 손길을 거부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심리적 갈등을 겪지만 그 와중에도 아들의 친구에게 이성적 감정을 보이는 등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한, 남편 게이조는 확인되지 않은 어떤 요인에 의해 한없이 의심의 꼬리를 놓지 못하는 소심함에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풀지 못할 운명적인 숙제를 껴안고 살아가며 자신의 옳지 못한 순간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게 하는지를 보여주며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만들고 있다. 한편, 도루의 갈등은 구체적이며 어른들이 일으킨 문제는 그들이 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짊어지고 나가야할 책임으로 생각한다. 요코와 결혼함으로써 이 모든 문제를 안고가려고 하지만 남매라는 현실을 벗어나긴 어렵다.

작가는 게이조, 나쓰에, 무라이, 다카키, 도루 이들이 보여주는 각기 다른 인간으로써 본질적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한 인간형을 만들어 놓았다. 요코가 보여주는 모습이 그것이다. 현실에서 겪게 되는 배반, 좌절, 절망,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 가는지를 통해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역부족일까? 아니면 종교에서 말하는 원죄라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마지막 선택이 자실이지만 작가는 다시 요코가 깨어날 것이라는 희망으로 사람들 사이의 오해와 갈등을 풀어갈 여지를 남긴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모순을 풀어갈 화두로 공감과 소통을 이야기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적 관계 속에 놓여지는 인간은 그 관계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이 보여주듯 많은 갈등의 요소는 바로 그 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자의든 아니든 사회적 인간으로써 살아가며 부딪치게 되는 다양한 갈등에 피하지 않고 대처할 묘수는 없는 것일까? 저자는 우리들에게 심각하게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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