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픔 -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이기웅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소통은 곧 감동이다
마음으로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 이런 걸까? 어느 때부터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나무며 꽃들이랑 붉게 타는 노을, 아침햇살에 빛나는 느티나무 잎의 떨림 같은 것들이 눈을 사로잡더니 점차 가슴으로 들어왔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온 자연 속 생명들은 복잡했던 머리를 개운하게 만들어주고 텅 빈 듯 한 가슴을 온기로 채워주었다. 이런 정도라면 요즘 사람들 누구나 누리고 있고 또 누리고 싶어 하는 것으로 충분히 공간하는 것이리라.

이기웅, 이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가 생각하고 꿈꿔온 세상에 대해 하나 둘 알아가며 느끼는 그것이 더 크다. 살아온 과정, 지금 살아가는 모습은 분명 전혀 다른 모습들이지만 묘한 공감이 있다. 하여,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나와 참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이 하나쯤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중심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이 무엇인지 이 책 한권에 다 담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어설픔 :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이들에게’의 저자 이기웅, 그는 한의사다. 아픈 사람들을 돌보며 병든 육체와 정신을 보듬고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이 보통의 의사와는 다른 무엇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한의학을 전공하고 한의원을 개원한 의사라는 것은 분명하다. 환자를 대하는 남다른 모습은 그가 독특한 한의사여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스무 살 무렵 세상과 만나는 자신의 삶의 가치가 세상 속에서 찾아지지 않아 그것을 찾는 내면의 여행을 지속해온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저자의 그간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환자를 본질적으로 만나기까지 침도 약도 처방하지 못하는 의사의 고뇌가 짐작이 된다. 그가 만나온 환자들에게서 얻은 교훈은 자신이 살아오며 추구한 꿈과 멀지 않다는 것이 그것이다. 약이나 침을 처방하기 전에 환자와의 소통을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여행을 준비하고 길을 나선다. 이것만으로도 좀 유별한 의사가 아닐까 싶다. 이 유별나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낯선 모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진료를 받았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가고 그와 함께 하는 동안, 자신이 잊고 있었거나 애써 외면했던 자신의 가슴에서 울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여 대부분 몸에 든 병은 우리 몸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것임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확인하며 깨우쳐가는 것이 진료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아프기를 바라는 한의사입니다. 아프다는 것은 삶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라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어설퍼지세요. 그러면 긴장이 사라지고 비로소 마음이 쉬어집니다.’

아픈 환자와 병을 치료하는 의사 사이에 이 말이 통할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될까? 환자를 아니 사람들을 대하는 저자의 심정이 절절하게 녹아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완벽함 만을 추구하고 강요되어지는 현실에서 이를 이겨내고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순간, 마음에 갇혀있던 그 무엇이 몸으로 나타는 것이 병인지도 모르겠다. 하여 일시적인 치료는 근본적으로 몸을 회복하는 데에 큰 작용을 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 이 의사가 유별난 방법으로 환자를 대하는 방법인 것이다.

‘어설프다’는 형용사는 익숙하지 못하고 엉성함이나 허술한 행동 따위를 설명할 때 사용된다. 완벽하다에 대치되는 그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유나 틈 등 무엇인가 다가설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으로 볼 때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람관계의 시작인 ‘만남’의 단초를 형성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현대인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의 한 원인으로 ‘인간과 인간의 본질적 만남’의 부재를 들고 있는 저자는 그 만남의 중요성을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틈이 보이는 어설퍼지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의사로써 환자를 만나는 경험을 적고 있다. 그 경험을 풀어 놓은 것이 곧 저자의 세계관이다. 또한 의사가 주체가 되어 밝힌 경험 말고도 그와 함께 소중한 체험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있어 친금감을 더해주고 있다.

자연을 보고 느끼는 동안 자연은 마음의 안식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동안 그 자연 속의 구체적인 사물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내면에서 울리는 깊은 공명을 느껴 스스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 길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울리는 소리와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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