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막스 뮐러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때부터 아름다운 삶이 열렸다
‘사랑’이라는 단어 속에 포함될 수 없는 인간관계가 있을까? 관계 설정에 따라 무한한 대상을 포괄하는 사랑이라는 말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이 담겨 있다. 흔히 말하는 아가페 적이고 플라토닉한 사랑을 포함한다면 그 범위는 그야말로 무한정일 것이다. 이렇듯 사랑이라는 말에는 나와 타자 사이에 벌어지는 감정의 상호작용으로 관계 맺어지는 소통이 그 근본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주는 묘미는 이성 간의 사랑이 중심에 있다. 하여 그 많은 문학작품에서 다뤄지는 사랑 역시 이런 남녀 간의 사랑이 중심이었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 중요성은 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이 변하고 그에 따라 가치관도 변하기 마련이기에 ‘사랑’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 사랑의 당사자가 살아가는 시대의 정신에 따라 사랑을 규정하는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 사랑에 대해 표현하고 어떤 결말로 이끌어가는 가는 시대와 작가의 가치관에 따라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은 자기 고백이다. ‘너의 오빠라도 좋고, 너의 아버지라도 좋다. 아니, 너를 위해 세상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는 한 소년의 가슴속에 담겨진 한 소녀를 향한 오롯한 감정을 자신과 타인을 향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순결한 마음을 가진 한 소녀가 있다. 신분도 높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진 불치의 병으로 인해 세상과 격리되어 세상으로부터 오렴되지 않은 자신만의 순수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소년은 낮은 신분, 세상과 부딪치며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사람이다. 이 둘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성장하면서 서로에 대한 의미를 확인한다.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그녀는 결정의 순간을 마냥 미루려는 듯 나직한 소리로 물었다. '왜라니요? 마리아! 어린애한테 왜 태어났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이 문장은 사랑을 시작하거나 지금 사랑하고 있는 청춘들 모두를 한번쯤 고뇌하게 만드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사랑하도록 운명 지워진 사랑이 바로 우리의 사랑이라고 믿고 싶은 소망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운명적인 사랑이 얼마나 될까? 현실은 다양한 조건에 의해 관계 맺어지는 사람들의 일상처럼 사랑 역시 그런 관계 맺음 속에서 자라나고 키워지며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독일인의 사랑’은 저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정의’와 더불어 저자가 활동하던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종교적인 가치를 포함하여 세속적인 눈으로 보는 사랑이 그 사랑이 가지는 본질적인 숭고함을 희석시키는 현실에 대한 저자의 대안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이 사랑을 아주 이상적인 모습으로 결론짓고 있다. 소녀의 죽음은 이 자기고백이 출발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한 때 이 세상에서 마리아 같은 성품의 인간을 만나 알고 지냈으며, 사랑했던 사실을 신에게 감사하게. 또 그녀를 잃은 것까지도.’

소녀를 담당했던 의사의 마지막 말이다. 그 의사 역시 한 여인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자괴감으로 한 여인을 향한 사랑을 그녀가 남긴 딸을 돌보며 한 여인에게서 시작한 사랑을 이웃과 세상으로 넓혀나간 사람이다. 저자가 사랑의 완성으로 표현하는 이 말 속에 담긴 사랑의 본질은 시대가 변하고 사랑이 가지는 의미가 변하더라도 언제나 사랑을 이야기하는 중심에 서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사랑이 세속화 되고 물질 앞에 힘을 잃어가는 사회라고도 한다. 사랑이 사람들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소통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대가 바로 그렇게 사랑을 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로 상대방을 ‘나을 위해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에서 ‘너를 위해 세상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변할 때 어쩜 사랑은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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