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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재기 외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33
히구치 이치요 지음, 임경화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5월
평점 :
작품으로 영원을 살아갈 작가
모든 사람의 삶은 살아가는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부정하고 싶더라도 알게 모르게 영향 받으며 그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점은 작가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때론 작가는 은연중에 그 시대를 반영한 작품을 쓰게 된다. 한발 나아가 자신이 처한 환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작품에 활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런 작가의 작품을 대할 때면 우리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키 재기’ 저자 히구치 이치요가 바로 그런 부류의 작가가 아닌가 싶다. 자신의 삶을 보다 구체적으로 작품화 한 작가 말이다. 그녀는 일본이 근대로 접어들면서 격동기라고 할 수 있는 막부시대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책벌레로 부를 만큼 책을 좋아하고 문학적 재능이 있어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후원으로 글쓰기 학교에 들어간다. 그 후 부모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가족의 급속한 몰락은 경제적 어려움과 더불어 가정의 파탄에까지 이른다. 경제적 탈출구로 글쓰기를 선택하고 23세 때 ‘키 재기’ 발표를 시작으로 ‘문예구락부’, ‘탁류’, ‘십삼야’, ‘갈림길’, ‘나 때문에’ 등을 잇달아 발표한다. 저자의 중심적인 주제는 자신의 삶이 반영된 여성들의 삶을 반영한 글쓰기였다. 시대가 바뀌는 전환기의 격동적인 모습, 사치와 빈곤, 해학과 슬픔 등을 소년 소녀들의 모습으로 담아낸 것이다.
을유문화사 발행 ‘키 재기 외’ 에는 ‘섣달그믐’, ‘키 재기’, ‘ 탁류’ 등 여섯 편의 그녀의 주요 작품들이 담겨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혼란기에 소년 소녀들이 겪을만한 일들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는 ‘섣달그믐’과 ‘키 재기’는 아이들의 시각에서 당시 시대상황을 대변한다. 특히, 요시와라 유곽을 배경으로 하는 키 재기는 소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자신의 배경을 중심으로 ‘큰길파’와 ‘골목파’로 편을 가르고 대립하고 있다. 우리나라 60~7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익숙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또한,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탁류’, ‘십삼야’, ‘나 때문에’ 등이 있다. 이들 이야기에서 보이는 여성들의 모습은 경제적 궁핍, 봉건적 가부장 제도의 모순, 유곽 생활 속에서 번민하는 여성, 이혼문제 등으로 여성들이 처한 환경에 대한 당야한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한국 문학의 어머니로 불리는 박완서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 역시 여성의 시각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을 소박하고 담백하게 그려내 많은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작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소설 ‘그 남자네 집’을 통해 전후 혼란기를 극복해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히구치 이치’나 ‘박완서’ 이미 그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작품을 통해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그 무엇은 오랫동안 독자들과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