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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너의 기억이
이정하 지음, 김기환.한정선 사진 / 책이있는마을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너로부터 나에게로 돌아온 사랑의 시선
한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무수한 날들의 추억이 있어서 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대부분 함께 보낸 시간, 그 시간동안 공유했던 무엇이 있어서 오랫동안 가슴에 남은 그리움으로 기억되기도하겠지만 때론 지극히 짧은 순간 마주쳤던 눈빛일 때도 있다. 그의 특정한 무엇이 내 기억 속에 그를 붙잡아 두었는지 보다는 순간이나마 공유했던 마음이 더 클 것이다.
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자 하는 작가들을 기억하는 것은 대부분 그의 글을 통해 형성된다고 봐도 무난할 것이다. 내게 ‘슬픔을 더 슬프게’, ‘외면하고 싶은 그리움을 더 애달프게 만들어 주는 미묘한 감정’으로 다가온 작가가 이정하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을지라도 그의 글 속에서 내가 본 것은 ‘사랑’과 ‘그리움’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시절 가슴 무너지는 사랑으로 아파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특정한 대상이 없기에 더 깊은 수렁처럼 느껴지는 마음 상태를 적절하게 건드리는 저자의 글에 마음 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점이 작가를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을 자극하는데 선수 같은 글쟁이’로 기억하고 말았다.
다분히 작가의 글을 오독한 결과일지 모른다. 작가의 시와 산문에 담겨져 있던 그 수많은 깊고 깊은 외로움, 고독, 절망, 그리움이 어쩜 내가 그렇게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오늘 다시 그의 글을 모은 산문집 ‘불쑥 너의 기억이’를 접하며 여전히 유효한 글쟁이에 대한 기억에서 조금은 달라진 무엇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의 글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그의 글을 보는 내 마음이 변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불쑥 너의 기억이’를 접하며 여전히 그를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을 자극하는데 선수 같은 글쟁이’로 유효하다는 것은 책에 담아놓은 사랑에 대한 갈망과 책 자체가 주는 어지러움이다. 작가가 숱하게 이야기했던 ‘사랑’과 ‘그리움’은 어쩜 사람들 모두에게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늘 같은 무게로 다가오는 화두일 것이다.
‘그런 날이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넋두리도 없이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서 정갈하게 울고 싶은 때가. 그리하여 눈물에 흠씬 젖은 눈과 겸허한 가슴을 갖고 싶다. 그렇게 흘린 눈물은 나를 열어가는 정직한 자백과 뉘우침이 될 것이다. 그것은 가난하지만 새롭게 출발할 것을 다짐하는 내 기도의 첫 구절이 되리라.’
보내야 하는 사랑에 대해 자신 내면의 울림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스스로가 자유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는 작가의 성찰에 공감한다. 사랑은 어쩌면 타인에게 내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타인은 원하지도 않은 방향과 깊이로 흘러가기에 가슴시린 아픔을 주거나 다투거나 더 나아가 이별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닐까? 이런 사랑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될 때 비로소 둘의 사랑은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때론 극도의 혼란스러움을 전해주듯 이 책의 편집 상태는 꼭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이라도 하듯 어지럽다. ‘시와 시인’에서 ‘내가 좋아서 한 짓인데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각기 장점을 가진 글과 사진이 만나 더 좋은 이미지를 형성할 수도 있지만 때론 서로를 묻혀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게 뭔가?’하는 느낌을 받는 지금처럼 말이다.
그렇더라도 이 책을 통해 사랑에 대한 믿음 하나를 건졌다. ‘그럴 필요 없네, 그녀의 이름만 봐도 충분하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면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에 사랑에 대한 희망을 걸어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