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억눌린 내면의 자신과 직면할 때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많은 것들 중에서도 죽음이라는 최후의 순간은 당연하게 그 첫 머리에 올라오지 않을까 싶다.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현실에서 죽음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살아온 날들과 현재의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살아가기도 벅찬 삶에서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쩜 호사를 누리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모든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죽음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에는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담겨 있다.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도 여러 차례 정신병원에 격리 수용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소재가 아닌가 생각된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는 모든 사람이 외면하고 싶은 진실, 즉 ‘죽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베로니카라는 20대 후반의 아가씨가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자살을 선택하지만 실패하고 빌레트의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저자는 무의미한 삶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자살을 선택한 베로니카, 성공한 변호사로 탄탄대로를 걷던 중 갑작스러운 공항장애를 일으켜 입원한 마리아, 잘나가는 외교관 집안의 외동아들이면서도 정신분열증으로 입원한 에뒤아르의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정신병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사람들 사이의 의도되지 않은 단절을 의미한다. 자의가 아닌 순전히 타의에 의해 사회로부터 단절을 겪게 되는 이들은 ‘미쳤다’라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원하지 않은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조그마한 차이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사항과 다를 때 겪게 되는 심리적 압박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사리 그 사회적 합의에 순응하고 만다. 그것이 ‘정상적인 사람’인 것이다.

빌레트에는 ‘미친사람’들이지만 그 속에서도 구분되는 부류가 있다. 베로니카, 마리아, 에뒤아르처럼 억압된 자아를 찾아내고 스스로 사회적 편견과 맞서려는 사람과 ‘형제클럽’으로 대표되는 ‘미친사람’들이다. 이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리고  ‘인간은 죽음에 직면했을 때 삶에 대한 열정이 강해진다’라는 실험을 강행하는 병원장이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아냐. 아니, 기적이야. 하루를 또 살 수 있어’ 자신의 심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차단당하고 상시적으로 죽음을 직면하고 살 수 밖에 없는 베로니카의 남은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누군가에게는 마지못해 살아가야 할 하루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하루하루가 선물 같은 시간이다. 그 선택은 오직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진정한 자아라는게 도대체 뭐죠?
사람들이 당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죠.’

‘미쳤다’라는 것은 결국 현실이라는 삶에 묻혀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고 자아를 억압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에 내 몰리게 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이웃과 사회로부터 격리 되는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죽음이라는 명제를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자아의 실현을 위해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미래를 상상한다. 그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저당 잡히고 다양한 체면치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니 나 역시 당연하게 살아가는 것이지만 한번쯤 자신의 현재 삶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에는 한없이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자자는 ‘누구에 의해 무엇으로 규정되지는 어떤 사람이 아닌 나 스스로 생각하는 나’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과정을 통해 찾아가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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