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옛 그림 속 양반의 한평생
허인욱 지음 / 돌베개 / 2010년 9월
평점 :
양반, 생계와 출세를 위해 번뇌하는 인간
사농공상의 신분제가 철저하게 유지되던 시대에 양반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지위와 권리를 보장 받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튼튼하여 자신의 권리를 지켜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문반과 무반을 함께 부르는 말인 양반의 모습을 극명하게 표현한 것으로 박지원의 ‘양반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양반의 허와 실을 이야기 한 것이겠지만 이만한 작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루한 일 끊어 버리고, 옛사람을 흠모하고 뜻을 고상하게 가지며, 5경이면 일어나 유황에 불붙여 기름등잔을 켜고서 눈은 코끝을 내리 보며 발꿈치를 괴고 앉아 얼음 위에 박 밀 듯이 동래박의를 줄줄 외어야 한다. 주림 참고 추위 견디고 가난 타령 아예 말며, 이빨을 마주치고 머리 뒤를 손가락으로 퉁기며 침을 입안에 머금고 (중략) 세수할 땐 주먹 쥐고 벼르듯이 하지 말고 냄새 없게 이 잘 닦고 긴 소리로 하인을 부르며 느림 걸음으로 신발을 끌 듯이 걸어야 한다.’(265페이지)
박지원은 양반전에서 양반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처럼 정해진 규범에 의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사는 모습을 현대인의 눈으로 본다면 그리 호감가는 삶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양반은 양반이다.
‘옛 그림 속 양반의 한평생’은 그러한 양반의 일생을 그림을 통해 눈으로 보며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홍도의 그림을 비롯한 풍속화와 외국인의 눈에 비친 그림들을 통해 그림 속 양반의 모습을 추출해서 이야기로 풀어내는 책이다. 저자 허인욱은 이 책에 담긴 양반의 모습을 담으면서 한 양반 집안의 출생이 가지는 의미를 비롯하여 서당교육을 통해 장차 입신양명의 길로 들어서는 모습을 출발점으로 삼아 결혼하며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며 관료의 삶을 살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의 기준을 삼는 것이 남아 있는 평생도라는 그림을 통해서다.
이 책은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양반문화의 학문하고 풍류를 즐기며 벗을 사귀며 관직에 나가 임금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등의 모습을 담아내기 보다는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일생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양반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는 책이다. 많은 책들에서 보았던 것과는 조금 시각을 달리하기에 양반의 다른 면을 보는 흥미로움이 배가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생생한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있어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며 참고하는 그림이 조선시대 화가나 작가미상의 그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키스의 코리아’처럼 영국화가 엘리자베스와 같은 외국인듸 눈에 비친 조선 양반사회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으며 또한 그림뿐만 아니라 문헌상에 나타나는 양반의 모습도 차용하여 설명하고 있어 이해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양반이 중추를 이루는 사회인 조선에서 양반의 삶을 살펴본다는 것은 결국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모습을 함께 살필 수 있는 것이기에 이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조선사회를 올바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조건을 제시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출생, 결혼, 관혼상제 등 오늘날에도 우리의 생활 모습 속에 여전히 유효한 전통문화를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것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양반의 진정한 속내는 어떻게 보면 자신이 속한 가문의 대를 잇고 그 가문의 명예를 유지해야하는 사명을 나면서부터 부여 받는 것이다. 입신양명의 길이 결국 자신만의 출세가 아닌 가문의 운명과도 직결되기에 그 부담감은 실로 어마어마했으리라 짐작된다. 사모관대와 비단 옷 속에 감춰진 양반들의 삶은 생계와 출세를 위해 번뇌하는 인간으로 보이는 면이 많다. 시대를 뛰어 넘어 현실의 삶에서 그 삶의 무게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는 우리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묘한 기분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