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기병 -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29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 지음, 권미선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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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갇힌 사람들
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어느 시기를 선택할지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유소년기의 기억을 소중하게 여기며 일생을 관통하는 그 무엇을 놓지 못할 것이고 다른 사람은 미래를 설계할 꿈으로 부푼 청소년의 학창시절 그것도 아니라면 활발한 사회적 활동을 벌이는 청, 장년기를 택하기도 할 것이다. 저마다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만 선택한 시기가 어느 시기가 되었던 그 사람에게 중요한 동기가 있기 마련이다. 

자신도 모르는 어느 순간, 자신을 사로잡아 살아가는 동안 내내 기억의 저편에서 함께하는 무엇인가가 있어 때론 즐거움으로 때론 먹먹한 가슴으로 힘들어 할 수도 있다. 그러한 기억이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일수도 있지만 사회변혁의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집단적인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회와 개인의 기억에 중첩되는 사건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각기 다른 세대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며 구체적인 삶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관심은 사회학이나 사회심리학 등 인문사회학의 중요한 연구주제가 될 것이며 인간 내면의 문제를 다루는 문학의 주제로도 훌륭한 탐구영역이 아닌가 싶다. 

‘폴란드의 기병’은 이렇게 사회와 개인의 기억에 중첩되는 사건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각기 다른 세대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며 구체적인 삶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인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본다. 스페인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일련의 사건 흐름에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손자에 이르는 3세대에 걸치는 동안 그들이 안고 살아야만 했던 삶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Antonio Munoz Molina)는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이 몰락하고 변화의 물결이 강렬하게 흐르던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다. 일찍 작품성을 인정받아 스페인 한림원 정회원에 선출되기도 하는 등 대표적인 현대 스페인 작가다. 그의 작품으로는 ‘폴란드 기병’을 비롯하여 데뷔작 ‘외딴섬의 로빈슨 크루소’와 ‘리스본의 겨울’, ‘만월’, ‘아내는 부재중’ 등이 있다.

제1부 목소리들의 왕국, 제2부 폭우 속의 기병, 제3부 폴란드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는 ‘폴란드의 기병’은 1부에서 주인공 마누엘과 나디아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 1898년 스페인의 대재앙 이후 할아버지 때의 이야기를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등장시켜 떠올리고 있다.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를 헷갈리는 이야기들과 사람들이 등장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쫒아가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외증조부,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세대까지 이어오는 동안의 스페인 내부이야기들이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폭력과 증오, 이념적 갈등 등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는 스페인의 근현대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이야기에 지루한 설명까지 읽어 가는데 긴 호흡이 필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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