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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그 뿌리와 동양학적 사유
강상규 지음 / 어문학사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천자문 - 허! 그것 참!
초등학교 시절, 무엇 하나 제대로 모르고 마냥 세상을 향해 열려진 마음을 내 보이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는 신문지를 오려 구멍을 뚫고 실로 묶어 한권의 연습장을 만드셨다. 나를 부른 아버지는 한 한가운데서 먹을 벼루에 먹을 가시면서 붓을 들게 하셨다. 그렇게 천자문 한자 한자를 그리듯 알아가던 시절이 눈앞에 선하다. 그 일마저 얼마가지 못해 그만두고 한자를 익히는 것은 학교 수업 말고는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내가 다시 한자를 접하며 그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금강경이라는 불경을 접하면서부터다. 강독하는 선생님과 옥편을 곁에 두고 몇 개월에 걸쳐 완독하는 과정이 한자에 담긴 뜻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를 알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천자문, 그 뿌리와 동양학적 사유]라는 책을 접하면서 새삼스럽게 한자가 담고 있는 오묘한 이치를 배워간다. 한자문화권에서 살아왔지만 성장과정이 세계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밀려 한자를 배우는 것이 마치 고리타분한 일로 여겨졌던 시기를 보낸 사람으로 너무나 많은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한자를 바탕으로 한 중국의 문(文), 사(史), 철(哲)을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천자문은 중국 남조 양의 주흥사가 글을 짓고 동진의 왕희지의 필적 중에서 해당되는 글자를 모아 만들었다고 하며 사언고시(四言古詩) 250구(句), 합해서 1,000자가 각각 다른 글자로 되어 있다.(두산백과사전)
천자문은 동양학의 근간이 되는 한자의 기본이 되는 글자들로 구성되어 한자를 공부하는 사람이나 동양의 사상이 담긴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입문서의 역할을 한 책이다. 이 천자문에는 논어, 주역, 맹자, 춘추좌씨전을 비롯하여 장자 등 동양고전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은 사언절구로 구성되어 있어 한자를 배우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양사상의 기본은 물론 인문학의 바탕을 익히기에도 좋은 교재다.
[천자문, 그 뿌리와 동양학적 사유]는 바로 우리가 익숙하게 들었던 천자문의 250구에 달하는 사언절구를 풀이하고 그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 해설해 놓은 책이다. 우선 각각의 절구에 해당하는 뜻을 이야기하며 중국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을 찾아 관련된 의미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 역사에서도 같은 맥락을 찾아내 함께 이야기한다. 천자문을 원문의 그대로 해설한 책이 아니라 그 원문에 근거를 찾아 해설하고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우리의 역사적 사실까지를 함께 해설하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의 장점으로는 <한자의 본뜻 풀이>로 한자에 담긴 뜻을 1900년 전 중국 자전인 설문, 이아, 집운, 광운, 고금주 등 기타 자전 등에 의거해서 그 뜻을 설명하고 있다. 알지 못했던 한자에 담긴 뜻의 깊은 의미를 알기에 충분한 역할을 하며 읽는 재미가 좋다. 쓰임에 따라 달라지는 한자의 뜻을 원래 그 자가 담고 있는 뜻을 알아가는 재미는 곧 현대의 눈으로 한자를 이해하고 해석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본문을 읽어가다 보면 저자의 동양학에 대한 애정과 그 공부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참으로 많이 나온다. 부록처럼 책의 말미에 있는 '공부자묘정비'의 해석을 읽다보면 저자의 동양학에 머무는 애정과 마음깊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생소한 낱말들이 이르러 멈칫거리게 된다. 지금은 잘 쓰지 않은 낱말들을 사용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 낱말들이 익숙하지 않아 더러는 각주를 읽어보고서야 비로써 그 뜻을 알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저자의 독특한 고전읽기의 방법이 고전은 고전의 맛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라면 의미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들에게 원문의 이해와 가독성을 떨어트리는 경우가 아닐까 한다.
[천자문, 그 뿌리와 동양학적 사유]를 마주하는 동안 한자를 새롭게 이해하고 그 속에 담긴 뜻을 빌어 내가 처한 조건과 시대를 읽어가는 특별한 재미를 얻는다. 더불어 저자가 이 책을 갈무리하는 글 속에 “허! 그것 참!”이라는 마음을 공유하고 싶은 욕심을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