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 - 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키워드 한국문화 1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사 김정희, 세한도에 의리를 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로 의리를 이야기 한다. 의리는 눈 밝은 이들을 포함해서 뭇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사이 올바름에 대한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의리란 누구의 강요나 특정한 조건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존재하면서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발휘되는 마음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친구사이, 스승과 제자, 군신간의 이 의리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기광사와 성중의 의리, 후대에 백탑파로 알려진 벗들의 마음, 퇴계와 고봉의 마음도 그에 못지않은 사람 사귐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오늘 그렇게 가슴 따스한 이야기를 추사의 세한도를 통해 다시 만난다.

추사 김정희는 금석문과 글씨와 그림으로 조선후기를 휘어잡았던 사람으로 내게 각인되어 있다. 물론 그중에는 세한도의 작가로도 한 몫 한다. [세한도]를 통해 한 물건 혹은 사건 하나에 담겨진 이야기를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지 세삼 놀라게 된다.

이 책은 세한도에 얽힌 이야기를 알려주고 있다. 세한도가 그려진 시대를 추정하고 그 전후 조선의 시대적 상황을 비롯하여 청나라를 보는 조선 선비들의 사상적 흐름, 청나라와 조선의 교류 상황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던 역관 이상적과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세한도가 만들어지기 전 국내외적인 상황을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살피고 있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세한도에 담겨진 뜻의 사상적 흐름과 당시 김정희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의 교류관계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비로소 세한도에 대한 이해를 올바로 할 수 있다고 저자는 판단한 것이다.

김정희를 이야기 할 때 추사 김정희 학문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청나라 옹방강과의 만남, 청나라 문인들과의 교류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김정희가 활동하던 시대는 명나라가 망한 후 청나라를 대하는 조선의 분위기가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에 이롭게 써야 한다는 북학에 대한 활발한 움직임으로 변해가는 시기였다. 그 변화의 중심에 다리 역할을 했던 역관들의 활약 또한 주목하게 된다. 세한도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이상적이 바로 역관이라는 사실이다. 이상적을 매개로 청나라의 소식이 제주도의 김정희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학문과 사상적 흐름에 무관할 수 없었던 조선 선비들은 중국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김정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김정희는 보다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수용하여 한 단계 성장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배경이 세한도의 창작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왕족이며 고관대작을 지내는 동안 당대 세도를 톡톡히 누렸던 김정희가 정치적 사건에 의해 누명을 쓰고 억울한 귀양살이를 하는 인생이 역전되는 상황도 세한도가 그려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세한도를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은 말이 있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세한도가 창작되어진 동기이며 세한도에 담긴 중심 사상인 동시에 김정희의 마음이다. 그러기에 세한도에는 김정희가 겪은 귀양살이의 험난함은 물론 당대 선비들의 마음이 담긴 문화적 산물이다. 그림 한 점에 담긴 시대정신을 비롯하여 작가의 사상과 학문의 지향점, 그리고 인간관계까지 두루 섭렵하는 기회가 된다.

그림 한 점이 창작되어지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한승원 작가의 초의를 통해 소치와 초의 그리고 김정희의 관계, 김영회의 조희룡 평전, 유홍준의 완당평전 등을 통해 주섬주섬 들었던 김정희의 학문과 삶에 비해 이 책 [세한도] 속의 세한도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김정희라는 인물은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다.

이 책은 그동안 읽었던 추사 김정희와 관련된 그 어떤 책보다 김정희의 학문과 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고문헌연구가 박철상 저자의 심도 깊은 연구와 김정희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또한 키워드 속의 키워드라는 꼭지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감초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학문과 사상의 가치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따스한 마음을 일깨워 주는 우정에 대해 알게 하는 세한도를 다시금 바라보게 된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하고 우리문화의 정수를 찾아 그 의미와 가치를 정리한다는 것이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 기획의도라고 한다. 이 같은 노력이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동기부여에 얼마나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귀감이라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