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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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어찰의 가치를 밝히다
2009년 세간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그것도 현 시대의 사건이 아니라 지난 역사의 한 단면을 속내까지 드러낼 수 있는 편지글이었다. 역사학계를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한꺼번에 주목 받았던 이것은 바로 정조어찰첩이다. 절대왕권을 거머쥔 왕의 서찰이라는 것도 주목받을 만한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관심을 모았던 것이 300여 편의 편지글이 한사람에게 보낸 것이라는 점과 그 대상이 자신의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심환지라는 점이다.

미디어와 개인통신의 발달로 편지가 가지는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예전에는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다. 조선시대 퇴계와 기대승의 서찰을 통해 사상의 흐름을 주도했던 논쟁을 비롯하여 한때 정조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서찰을 통한 아버지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서찰은 안부를 묻거나 사사로운 감정을 전하는 역할 이외에도 중요한 학문이나 사상적 고뇌의 과정을 서로에게 전달하고 논하는 기능을 담당했던 것이다.

조선왕조에서 왕이 서찰을 보낸 경우는 종종 있었다. 왕을 둘러싼 친족의 안부를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간혹 정치적 사안에 대해 신하와 의견을 주고받은 서찰도 있긴 했다. 하지만 정조 왕처럼 이렇게 서찰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심중을 그대로 드러내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갔던 사례는 흔치않은 경우다.

[정조의 비밀편지]는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정조어찰첩이 발견되고 나서 그 역사적 가치를 검증하고 분석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 저자가 정조의 어찰첩에 관한 그간의 연구 담은 책이다. 저자 안대회는 이 어찰첩을 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과 면밀하게 비교 분석하여 정조어찰첩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와 현재적 가치를 밝혀 놓고 있다.

저자는 정조어찰 속에 나타난 정조의 다양한 측면을 말하고 있다. 정치스타일, 어떤 사대부와도 견줄만한 학문적 성과, 문체를 통해 알 수 있는 당시 상황이나 심지어 이두문자의 사용, 오늘날 육두문자에 비견되는 말의 사용 등을 비교 분석하여 일반 독자가 이해하지 쉽도록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정조와 관련된 그간의 중요 의혹 중 하나였던 독살음모에 관해서도 저자의 의견을 근거를 제시하며 밝히고 있다.

어찰첩을 통해 살펴본 정조왕은 지금까지 일반적인 모습으로 알려진 성군이라는 이미지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왕권을 가진 정치가로써의 면모와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비밀을 유지한다는 기본 전재 하에 작성된 서찰이기에 가능한 요소들이다.

관련 학계를 비롯하여 많은 분야에서 이목을 집중시켰던 정조어찰첩은 일반인이 접근하기에는 한계와 어려움이 있었다. 이 책 정조의 비밀편지는 일반인에게 정조어찰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또한 저자의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분석과 더불어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일반인과 공유하려는 의지가 잘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학문을 사랑한 학자, 아버지를 여윈 비운의 아들, 백성을 사랑한 성군, 개혁군주 등 정조를 일컬어 하는 말들이다. 이러한 표현들 속에 정조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갑작스런 정조의 죽음과 그 후 급속하게 몰락의 길로 접어든 조선의 역사를 두고 개혁을 완성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그 중심에 있을 것이다. 한 왕조의 흐름에서 중요한 갈림길에 섰던 왕, 정조에 대해 공식적인 사료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다양한 면모를 밝혀준 [정조의 비밀편지]를 통해 다시 보는 정조는 이래저래 복잡한 심경과 더불어 새로움으로 다가서는 왕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하고 우리문화의 정수를 찾아 그 의미와 가치를 정리한다는 것이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 기획의도라고 한다. 이 같은 노력이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동기부여에 얼마나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귀감이라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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