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 최영미 산문집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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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저절로 알게 되지
낱말 하나로 무엇을 나타낸다는 것이 때론 유용할 때도 있다. 알지 못하는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느낌을 공감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 대표성을 띄는 낱말 하나가 그 사람 혹은 사물의 왜곡된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라면 어떨까? 어린시절이후 별명이라며 그 사람을 이름 아닌 다른 무엇으로 불렀거나 불리었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어떤 느낌일까? 이 야기기를 꺼내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한 사람을 대표하는 말. 그 말에 의해 상처받고 치유되지 못하는 숱한 경우들을 봐왔고 다시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문득 아~ 나도 그렇게 살아왔구나 하는 자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최영미의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라는 산문집을 읽으며 내내 떠나지 않은 생각이 있다. 바로 한 사람을 나타내는 특정 단어에 집중되어 그 사람의 글을 이해하는데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던 저자 최영미는 나에게는 [서른]이라는 단어와 떨어질 수 없는가 보다. 저자의 이 책이 워낙 유명하기도 했지만 내가 저자를 처음 만났던 것이 [서른, 잔치는 끝났다]였기 때문이리라. 저자의 본뜻과는 다르게 서른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있어 특별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서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글의 완성은 산문이라고 했다. 산문만이 갖는 장점이 확실하게 부각되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그 글에 담긴 저자의 일상적인 속내가 자연스럽게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리라. 저자의 이 책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을 통해 나는 [서른]이라는 낱말을 벗어버리고 저자를 처음 만나는 기분으로 읽어간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과 비슷한 저자의 소소한 일상을 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만의 태도를 느끼고, 사람들과 세상 속 다른 존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통해 공감한다. 이야기를 쓴 시점이 다소 먼 시간들이기에 떨어지는 현장감은 오히려 가슴을 닫는 빗장을 살며시 열 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좋아하는 스포츠, 기계치로써 느끼는 불편함과 황당함, 혼자 살아가는 여성이 감내할 수 밖에 없는 현실, 할머니에 대한 기억 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통일이나 교육문제 등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에 박수를 보내거나 ‘그건 아니다’라고 머리를 흔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낯선 곳 낯선 여행에서 돌아와 이제는 다른 기분으로 짐을 풀 듯 펼쳐지는 저자의 글에서 세월의 무게와 여성의 소박함이 전해진다.

누군가 우연히 다른 사람의 일기를 보듯 내 삶을 훔쳐보고 있다면 어떨까? 세상엔 모두에게 완벽한 비밀이 없기에 비밀이라고 우기며 숨기고 싶은 일기 속 내용 일지라도 내 안에 넘치는 그 무엇을 세상을 향해 살며시 드러내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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