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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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물...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품속에 끌어안는다. 어쩜 그것이 물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크기와 깊이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심연을 이루는 그 품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보듬고 보듬다 도저히 어쩌지 못하게 되면 한 번씩 기지개를 펴듯 토해내곤 하지만 그것뿐이다. 물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고스란히 자신의 가슴속에 품어야 한다는 것을.

김훈의 [공무도하]는 바로 그 물을 매개로 하고 있다. 비록 사람들의 이런 저런 세상살이가 전면에 등장하지만 내내 홍수, 강물, 바다 즉, 물과 함께 시간의 강을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옛 고조선 나루터에서 여옥이 흘렸던 눈물과 공무도하의 그 물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말없이 우리를 껴안고 있다.

저자의 전직이 기자라고 했다. 밥벌이를 위해 글을 쓴다고도 한다. 그 눈으로 본다면 기자나 소설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시간 한쪽을 싹둑 잘라 지면에 적나라하게 펼쳐놓고 있다. 해가 뜨면 시작되는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에 아프고, 답답하고, 지루하고, 화나고 때론 싱겁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시간을 잡아먹으며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공무도하]라는 소설은 장마가 지고 홍수가 나는 도심의 한복판에서 저 살자고 피터지게 싸움질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야 하는 기자 문정수는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에 달려가 기사가 될 만한 꺼리를 찾는 사회부 기자다. 그의 눈을 통해 보는 우리 삶은 문제투성이로 보인다. 그 중심에 우뚝 서 있는 것이 아픈 가슴으로 겪었던 노목희, 오금자, 장철수, 박옥출 그리고 후에까지 결국 나와 우리 이웃들이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장철수의 입을 빌어 쏟아내는 이 절규는 결국 나이면서 너고 우리며 작가 자신이다. 작가는 이렇게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그간 역사의 현장을 빌려와 오늘을 살려내고자 했던 작가의 작품들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찾았다. 이제는 홍수, 빈민, 농민, 노동자, 미군기지, 환경문제, 이주여성 문제 등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시간으로 무대를 옮기더니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려내 놓고 기운을 다 빼고 나서 다시 걸어가야 할 시간을 어떻게 채우고자 하는 걸까?

강은 이곳과 저곳을 구분하고 단절하는 의미가 크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건너갈 수 있게 하는 소통의 다리이기도 하다. 작가는 강을 건너야 찾을 수 있는 피안의 세계 보다는 인정하기도 싫고 끝내 부정하지도 못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물이 주는 부드러운 포용력으로 나와 우리 모두를 감싸 안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만이 희망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 문제다.]라는 저자의 말이 오랫동안 내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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