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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자의 꿈, 존 뮤어 트레일 ㅣ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 6
신영철 지음, 이겸 사진 / 은행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조선 선비들이 유산록을 돌려본 느낌을 알 것 같다.
현대인들이 여행을 가고 또는 여가를 즐기는 취미활동에 관심이 많은 것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고자 하는 것이라 본다. 성별과 연령을 불문하고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쉼과 여유가 있어 보여 반갑다. 그렇게 누리려는 것들 중 하나가 ‘길을 걷는 것’이다.
옛 우리 선비들에게 유산록이라는 것이 있었다. 말 그대로 산을 가고 오는 과정에 대한 산행기다. 그 산행기에는 가고 오는 일정이 중심이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경관 묘사 보다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의 느낌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글 자체가 따스한 기운이 풍겨난다. 산을 가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유산록으로 그 마음을 대신했다. 심경호의 [산문기행,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를 통해 그러한 느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오늘 그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책을 만났다. [걷는 자의 꿈, 존 뮤어 트레일]이라는 전문 산악인이라 할 수 있는 신영철의 책이다.
존 뮤어 트레일, 낯선 길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캐나다의 웨스트코스트 트레일과 함께 세계 3대 트레일로 꼽히는 미국의 존 뮤어 트레일에 관한 책이다. 우리나라 지리산 둘레길이나 제주도 올레 길은 요즘 들어 각광받는 길이여서 자주 들어보았지만 외국의 이런 길들에 대한 정보는 고작 남들의 여행서를 통해 접하는 것 말고는 없다.
존 뮤어 트레일, 자연보호를 위해 입장객 수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이 길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산승인을 받아 동료 여행자들과 18일 간 여행하는 동안 함께 또는 혼자 걸으며 느낀 순간의 감동들을 사진과 글로 생생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에게는 너무 먼 낯선 땅이지만 존 뮤어 트레일의 358km에 달하는 그 길이 온전히 담겨 있음을 느낀다. 저자의 마음으로 담겨있고 전문 사진가의 눈으로도 담았다. 때라고는 전혀 묻지 않은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여실히 드러난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바라보는 눈엔 경이롭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존 뮤어 트레일을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은 그 속에 숨 쉬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역사를 담고 있기에 더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들의 슬픈 역사, 금광에 대한 꿈으로 서부를 찾았던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희망, 미국이 오늘날 거대 제국주의로 성장하게 된 배경도 숨어 있고, 이 길을 지키려는 레인저들의 노력이 있고, 이 길을 찾은 사람들의 순수한 사람의 마음이 있다. 그래서 존 뮤어
트레일은 더 가치 있는 길이라 생각된다.
저자가 걷고 또 걸으며 발견한 것은 무엇이였을까? 환경운동가이자 자연주의자인 존 뮤어의 이름을 붙인 존 뮤어 트레일,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빠지고, 난생 처음 야생동물들을 경험하고, 숨이 차도록 힘들었던 여정을 함께 한 동료 화가, 사진가에게 이 경험이 앞으로 삶에 어떻게 투영될지 자못 궁금하다.
‘빛의 산맥’이든 ‘물의 산맥’이든 어떻게 부르던지 그 길은 앞으로도 걷는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는 그곳에서 사람들을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난 조선 선비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멋진 유산록을 읽으며 걷는 자의 꿈을 나누고 있다. 조선선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