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커피향에 묻혀버린 사기꾼의 사랑
방각본 살인사건, 열하광인 등으로 조선시대의 한 귀퉁이에서 노닐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김탁환은 내게 조금은 익숙한 이야기꾼이다. 그를 통해 또 다른 재미(?)의 시간을 갖는다.

이제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일상품이 되어버린 커피는 그것을 즐기는 사람에 따라 온갖 세상을 가슴에 품게 만든다. 커피는 내게 원재훈 소설 [바다와 커피]에서 그 절정을 음미 할 수 있었다. 커피에 투영된 사람들의 모습은 커피의 그 맛만큼이나 다양하다. 커피 이야기는 그 후 두 번째다.

노서아 가비는 어두운 먹구름으로 푸른 하늘을 보기도 어려웠던 개화기 때 역관 김홍록에 의해 커피를 매개로 벌어졌던 고종과 세자 순종의 <고종독살 음모사건>이 이야기의 동기였다고 한다. 세상을 향해 닫혔던 문이 열리며 이질적인 문물과 접하는 시기에 커피라면 단연 흥미 거리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거기에다 국왕을 노린 음모사건이라면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노서아 가비는 그 커피를 매개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격변의 시대 중니공 따냐는 역관이였던 아버지 덕에 노서아 가비도 접하게 되는 평안하고 유복한 삶을 누리던 중 청나라 연행길에 천자의 하사품을 훔쳐 달아났다는 누명 속에 죽음으로 인해 열아홉 나이 국영을 넘어 러시아로 향하게 된다. 방랑자의 삶을 살아가던 따냐는 살아남기 위해 거짓과 사기로 살아가다 같은 처지의 이반을 만나고 자신을 스치고 지나갔던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사랑을 느끼게 된다. 위조한 그림을 팔고, 전 세계를 누빈 여행가로 속이기도 하고, 러시아 거대한 숲을 팔아치우기도 하는 등 대담한 사기행보를 벌인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랑하는 사람 사기꾼 이반을 따라 조선으로 들어온 따냐는 러시아,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방황하던 당시 어수선한 상황에서 대한제국 황제 커피를 좋아하던 고종의 바리스타가 된다. 아관파천과 러시아 공관에서 마지막 사기를 준비하던 이반과 따냐, 러시아 공사 베베르 그리고 고종 사이에 벌어지는 음모와 배신, 마지막 대 반전이 그려진다.

원재훈의 소설 [바다와 커피]는 커피와 어울어지는 사랑이라면 따냐와 이안 두 사기꾼들의 사랑이 커피맛에 묻힌다. 오히려 고종의 따냐에 대한 보살핌이 더 커피맛과 닮아 있다. 그래서 부제가 사랑보다 지독하다고 했나 보다.

기존 김탁환의 소설들처럼 이 [노서아 가비] 역시 단숨에 읽힌다. 내용 전개가 간결하고 읽기에 쉽다. 당시 시대 상황의 복잡성이나 암울함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다른 느낌의 경쾌한 이야기의 진행이다. 이러한 점이 김탁환 소설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못내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으며 흥미꺼리로서 단지 소설 한편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시대상황을 무시한 이야기꺼리로는 충분할지 모른다. 한국소설과 김탁환의 소설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소설이 철학서나 논문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이런‘이야기’에 있다고 한다.
한사람의 독자로서 선 듯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어떤 형태의 작가든 시대정신의 산물과 동떨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한편의 소설에서 시대의 아픔에 등 돌리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무리일까?

한국소설이 놓쳤던 독자들을 되찾으려는 도전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시도라는 것에 한표를 던지기엔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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