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스며드는 아침 - 제139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양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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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시간과 함께 바뀌어 간다.
자신이 바라는 소망을 살아가는 동안 내내 유지하고 그 신념을 지켜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지난 역사를 굳이 돌이켜 보지 않더라도 가까운 6월 항쟁의 현장에 뜨거운 가슴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 신념을 지켜나가지 못하는 이유야 참여했던 사람 수 만큼의 별의별 이유가 다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여 처음 갖게 되었던 그 마음이 변 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다만, 살아가는 구체적 형태가 달라지더라도 잃지 않아야 할 것이 있는 것이다.

[시간이 스며드는 아침]은 1989년, 그 초여름 아침 천안문 광장의 기억을 되살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난한 시골 출신의 주인공 하오위엔은 입신양명을 바라는 가족의 기대를 안고 대학에 입학한다. 모든 것은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꿈으로 가득한 대학생활에 적응해 가는 동안 학문과 조국의 미래를 열어갈 당찬 포부를 펼치기도 한다. 그 꿈에는 고향친구가 함께한다.

선망의 대상인 칸교수도 알게 되고, 마음 나누는 친구 즈챵과 대학생활에 적응 할 즈음 대학가에는 관료의 부정부패 타도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하오위엔은 국가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명감으로 이에 적극 가담한다. 베이징으로 가서 시위에 참여도 했지만 결국 천안문 사태로 좌절한다. 낙담해 있던 하오위엔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주점에 갔다가 학생운동을 젊은이들의 혈기에서 비롯된 철없는 행동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과 난투극을 벌이는 바람에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만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일본인 2세인 우매와 결혼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시간이 흘러 일본에서 인쇄공으로 일하며 일본 내 재일 중국 민주 동지회에 가입하고 여전히 조국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상황이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그곳에서 만난 같은 중국인 사이에 이미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답답한 심정이지만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다.

아침 해를 보거라. 무지개가 보일지도 모르지...
보장 될 것 같았던 장미 빛 미래도 졸업 후 꿈을 나누었던 친구도 멀어져 버린 암울한 주인공에게 베이징 출신으로, 베이징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철학도로, 자본가나 지주를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변증법에 어긋난다고 한 발언으로 우파로 몰려 척박한 시골로 추방당한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우리들의 아버지가 그런 것처럼 늘 든든한 버팀목이다.

몸은 비록 떨어져 있지만 천안문 사태, 홍콩반환, 베이징올림픽...등 중국의 현실과 무관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늘 가슴속에 그늘이 함께 한다. 이제는 그 그늘에서 자신을 비롯한 깐교수, 친구 즈챵도 다 벗어나길 바라는 심정이고, 늑대가 커서 이제는 다른 그 무엇으로 변한 상황에 대한 적응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책을 읽어가다 아쉬운 점이 많다. 시위에 참가하게 되는 동기, 주인공이 겪게 되는 심정 변화나 상황의 전개가 생략되어진 느낌이 다분하다. 막연하게 동참하게 되는 시위, 언제 끝날까? 하는 의문, 시위과정에서 연행이 아니라 좌절에서 오는 마음을 달래기 위한 술자리의 다툼으로 퇴학 등 이것만으로 이끌어 가기엔 빠진 부분들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아쉬움이 커진다.
저자의 말대로 시간이 흘렀고 상황도 변했고 그래서 사람도 변한다고 하는 이야기 속엔 소신을 굽히고 현실과 타협하여 자신을 지키고 안주하려는 속내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변절을 이야기 하려면 그 이전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시대와 장소를 불분하고 변혁의 시기를 고뇌하며 함께 보냈던 사람들의 지금 모습 속에 많은 생각을 하며 주인공 하오위엔에게 했던 아버지 말을 되세겨 본다.
시대와 상황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소신을 지켰던 바보를 보내며 “남은 세상 어떻게든 해 보겠다”는 말이 늘 가슴에 남는다.

시간이 스며드는 아침 한켠으로 태양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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